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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숲에 들다

내가 죽어보는 날 / 조오현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길, 뼛가루도 뿌려본다 -조오현 시 '내가 죽어보는 날' 모두 * 스님께서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간략하면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말라' 와 '사람 차별하지 마라' 라고 말씀 하셨다. 세상이 돈을 대접하고, 부가 인격도 대신하는 세상이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기본이다. 금전으로 대신할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사람사는 세상에는 수없이 존재함이 감사하다. 내가 존재하려면 다른.. 더보기
주름 / 장 옥관 돋보기 쓰고 아내를 보니 온 입가에 잔주름이다 주름진 것들은 모두 슬프다 갓 태어난 딸아이 물미역 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에도, 누운지 삼일 만에 흰 나비로 빠져나간 어머니의 무명이불에도 지울 수 없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힘줄 튀어 나오도록 꽈악, 꽉 움켜 쥔 젊은 날 주먹의 안쪽에도 분명 주름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주름의 갈피마다 스며들었던 눈물이여, 슬픔이여 꿈이든 사랑이든, 한순간 팽팽히 부풀었다 꺼진 것들에는 필시 주름이 잡혀 있을 터 침대 위 던져 놓은 아내의 낡은 브래지어 캡에도 보프라기 인 주름이 자잘하게 잡혀있다. - 장옥관 시 '주름' 모두 *언젠가 부터 마눌님의 눈가의 주름이 예뻐 보이기 시작 했다면 '오버' 일까?! 보톡스다, 성형이다 하여 팽팽한 미인들 보다는 자연스레 세월을 함께 한 .. 더보기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 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 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데서 피지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은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김용택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전문 *벚꽃이 눈처럼 훝어져 날리며 떨어지더니,, 목련이 뒤늦게 봉우리를 열었다. 사는게 어렵고, 생각이 모아지지 않아, 아무도 지인이.. 더보기
사는 이유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수 있는 흰 종이가 창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 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최영미 시 '사는 이유' 모두 * 살수록 '투명한 것'을 잃어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누구의 말처럼 '노회'하여 이제는 스스로를 정화하는 것을 스스로 버린 것일까?!, 친근한 벗들.. 더보기
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 함민복 시 '서울역 그 식당' 모두 * 먹고 사는게, 제일 큰 일 인데 먹을 만한 식당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간다. 둘러보면 제법 맛이 있고, 주인들도 무난 했음에도 인건비나, 오르는 가게세에 버티지 못하고 .. 더보기
아름다운 회항/공광규 멀리 순항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비상착륙을 하려면 항공유를 모두 버리고 무게를 줄여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전한 착륙을 위하여 정상항로를 벗어나서 비싼 항공유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자신을 비우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 공광규 시 '아름다운 회항' 모두 * 길지도 짧지도 않은게 인생이지만, 몇번은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이나 삶의 경력에 무관하게 모든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험에 마주 설 때가 있다. 그 피할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건강 같은 기존적인 환경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을때 최선을 다했다면,, 담담히 모든걸 내려놓고 돌아설 수 있기를 바란다. 힘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백면서생.. 더보기
향일암 가는 길/공광규. 바위와 바위가 기댄 암문을 거쳐야 암자에 오를 수 있다 암문은 좁고 좁아서 몸집이 크거나 짐이 많은 사람은 통과 할 수가 없다 꼿꼿한 허리도 굽혀야 하고 머리를 푹 수그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무릎걸음도 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올라가도 바위가 막아서고 사철나무가 막아서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웅전에서 해우소 가는 길도 그렇고 상관음전과 하관음전 가는 길도 그렇고 산신각 가는 길도 그렇다 비가 오면 우산을 접어야 한다 이건 분명 부처님의 기획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바위 문을 통과했다 빗방울이 나를 밟고 활엽수에게 건너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산이 뒤척이며 파도 소리 법음을 내고 있다. - 공광규 시 '향일암 가는 길' 모두 * 삶에 내공이 있는 분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 더보기
외도 / 공광규. 음력 스무날 거제도에 가면 다른 섬 외도에 갈 수 있다 뱃삯은 망치해변에서 담아온 안개 한 가방 거스름 돈은 지세포 바람 한 줌 포말 갑판에 올라 풀잎 등대를 바라보라 녹슨 몸통에 소주를 주유하고 마음의 온도를 일 도 높이면 이내 기관이 가열하여 외도에 닿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리고 외도에 다녀와선 외도를 말하지 말라 달빛안개 안개부두 외도행 여객선은 말하는 순간 이미 사라졌으므로. - 공광규 시 '외도' 모두 * 세상의 가슴 두근거림이나 신비감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모든게 파헤쳐지고 환하게 드러나, 모두가 공유하기를 원하는 세상을 살고있다. 신비감이 사라지니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나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나 흠모의 정 같은 단어도 잊혀져 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인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