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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

집보다는 길에서, 집에서보다는 길에서 가고 싶다. 톨스토이처럼 한겨울 오후 여든두 살 몸에 배낭 메고 양편에 침엽수들 눈을 쓰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눈 혼자 터벅터벅 걸어 기차역에 나가겠다가 아니라 마지막 쑥부쟁이 얼굴 몇 남은 길섶, 아치형으로 허리 휘어 흐르는 강물 가을이 아무리 깊어도 흘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 뼈대 그 앞에 멎어 있는 어슬어슬 세상. 어슬어슬, 아 이게 시간의 속마음! 예수도 미륵도 매운탕집도 없는 시간 속을 캄캄해질 때까지 마냥 걸어. - 황동규 시 ‘집보다는 길에서‘ *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 젊은시절 부터, 산을 좋아 했다.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북한산, 관악산을 주말마다 오르곤 했다. 군대에 가서 3보 이상은 탑승 이라는 포병 이었는데 ‘시범부대’로 뽑혀서 .. 더보기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 시 '작은 사랑의 노래' 모두 -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마눌님과 아이들이 출근하고 이제야 조용해진 아침에 커피한잔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코로나 위중증자의 확대가 무서워 재택근무를 시작한지 이주째,, 출근시간도 새벽투석 시간도 새벽 5시에 맞춰 놓아서인지, 늦잠을 자야지 하고 알람도 해제 해 놓았는데,, 번번이 5시를 넘기지도 못하고 눈이 떠진다. 수면제 처방에서.. 더보기
7월의 시 - 茶山草堂 / 황동규 1 만나는 사람들의 몸놀림 계속 시계침 같고 "반포 치킨"에 묻혀 맥주 마시는 내가 지겨운 기름 냄새 같을 때 읽는 책들도 하나같이 맥빠져 시들할 때 알맞게 섞인 잎갈이나무와 늘푸른나무들이 멋대로 숲을 이루고 서서 눈발 날리는 강진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산초당에 오르곤 한다, 는 실은 거짓말이고 다산 초당은 달포 전에 처음 갔다 해가 떴는데 눈발이 날리는 희한한 날이었다 몇 대의 버스와 택시를 종일 번갈아 타고 강진의 귤동 마을에 도착했다 공터에서 차의 맥박이 끊어지자 흰 눈발이 앞창을 한번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열어 주었다. 2 바쁘게 뛰다 보면 온갖 냄새와 욕지기가 다 섞여서 멍하게 사는 것이 그 중 제일로 된다 혹은 띵하게 사는 것이...... 예전 같으면 왕들이 그 사정을 눈치채고 아랫사람들에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