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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

어릴적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 더보기
* 정진(精進). 오백년 천년을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가슴께에 칠해진 어지러운 원색의 빛깔들 여름이면 바다처럼 펼쳐진 산줄기에 나누어주고 가을이면 새빨간 빛깔들 뒷산 숲에 던져주고 나머지 짙게 덧칠해진 단청빛마저 마음에 걸려 바람에 던져주고 하늘에 풀어주고 세월 속에 가장 때묻지 않은 얼굴빛으로 엷어져 본래 제가 지녔던 나무 빛깔로 돌아여며 겸허해지고 담백하게 욕심을 벗어 더욱 굳세어지고 그렇게 버리면서 육백년을 지나왔으리니 백년도 백년의 절반도 다 못 살면서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빛깔을 지니고자 더 큰 목소리와 더욱 단단한 기둥을 거느리고자 기를 쓰다가 허세부리다가 우리들은 사바세상 티끌과 먼지로 사라지나니 진정 오래오래 사는 길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요란한 파격은 애당초 마음에 두지 않았던 맞배지붕은 보여주.. 더보기
끊긴 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 졌다 누구 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 거리는 집게 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발짝을 더 나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 였을까 나도 그러 했었다 나도 이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 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던지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 더보기
22 - 31. 체인지 새 한 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 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배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까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도종환시 '우기'전문 *가는 것은 움츠러듦이요, 오는 것은 늘어남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으며 나아가도 호랑이가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말 속에는 은근한 삶의 철학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속담에는 외부조건의 변화에 맞춰 나를 변화 시키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뜻을 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