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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세상. 초록을 말하다 조 용 미 초록이 검은색과 본질적으로 같은 색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언제였을까 검은색의 유현함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검은색 지명을 찾아 떠돌았던 한때 초록은 그저 내게 밝음 쪽으로 기울어진 어스름이거나 환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는데 한 그루 나무가 일구어내는 그림자와 빛의 동선과 보름 주기로 달라지는 나뭇잎의 섬세한 음영을 통해 초록에 천착하게 된 것은 검은색의 탐구 뒤에 온, 어쩌면 검은색을 통해 들어간 또 다른 방 그 방에서 초록 물이 들지 않고도 여러 초록을 분별할 수 있었던 건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었기 때문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 탐구가 게을러지면 다시 아팠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어도 꺼내어도 새로운 다른 초록이 나오는, 결국은 더 갈데.. 더보기
가문비 나무, 잔설처럼 쌓여 있는 당신, 그래도 드문드문 마른 땅 있어 나는 이렇게 발 디디고 삽니다 폭설이 잦아드는 이 둔덕 어딘가에 무사한 게 있을 것 같아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면서 굴참나무, 사람주나무, 층층나무, 가문비나무...... 나무 몇은 아직 눈 속에 발이 묶여 오지 못하고 땅이 마르는 동안 벗은 몸들이 새로운 빛을 채우는 동안 그래도 이렇게 발을 디디고 삽니다 잔설이 그려내는 응달과 양달 사이에서 - 나 희덕 시 ‘殘雪잔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2005(1994). 치키치키, 빗방울이 16비트 리듬으로 살아나는 광릉수목원에 가본 적 있나요 수십 만의 히피나무들이 부동자세로 입석 매진된 한밤의 우드스탁 말이예요 레게머리 촘촘한 수다쟁이 가문비나무와 짚내복을 사철 입고 사는 늙.. 더보기
미선나무 - 한국에만 있는 하얀 개나리. 푸른미선나무의 시 [고형렬] 저 충북 어디 가면 미선나무들이 많이 산다지 그녀들 이름은 상아미선나무 분홍미선나무 혹은 둥근미선나무 라지 그중 푸른미선나무도 있다지 영원히 봄에도 푸른미선나무 여름에도 푸른미선나무라지 겨울 눈이 좋지 않은 요즘도 푸른미선나무는 자신의 미선나무지 나의 미선나무는 되지 않는다지 교목처럼 높지도 않고 위태롭지도 않아 키는 고작 일 미터 향기도 짙지 않은 푸른미선나무는 항상 기슭에 살아도 자신이 왜 푸른미선나무인진 모른다지 그 자리에서 거치 없는 잎사귀와 관다발만 수없이 만들었지만 그 끝없는 사계의 반복만이 그의 산에 사는 즐거움이라지 처녀 같은 푸른미선나무들 자줏빛 반질한 가지 꽃봉오리는 이듬해나 꽃 먼저 터트리는 푸른미선나무 그 푸른미선나무는 충북 어디 산기슭에만 산다지 - 나.. 더보기
4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며,, - ‘시 사랑 부산정모’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 문재 시 ‘농담 ‘ * 제국 호텔, 문학동네, 2004. * 2024. April. 20. 부산 시사랑 정모. 오프상으로 접하던 그리운 ‘시민’들을 만났다. 운치있게 안개비가 내리던 날에 4시간 15분 만에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시간상 pm03 시 모임이라 내자는 상큼하게 손을 흔들며 여행을 떠났고, 부산 지하철운 처음이 아니라 자신있게 찾아 승차 했다. 토요일 이지만 다소 붑비는 전철안,.. 더보기
투석혈관이 자꾸 막히는 경우. - 이신아 (이대목동병원 신장내과 임상조교수) Key message 투석혈관 기능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투석혈관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장(章)에서는 인공신장실에서 투석혈관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질문에 대한 답과 부연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도대체 왜 투석혈관이 막히는 건가요?” 투석혈관이 막히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이론적으로, 그 시작은 투석혈관 조성수술이 시행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석혈관은 동맥의 혈류 중 일부가 인공적인 단락 형성을 통해 정맥으로 연결되어 인위적인 혈류가 흐르는 혈관입니다. 이 인위적인 혈류는 혈관 내 와류와 제트류를 발생시켜 혈관벽에 스트레스가 되는데, 이 스트레스가 혈관벽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여 혈관내막이 두꺼워지는 한.. 더보기
‘아이 라이크 쇼팡..? - 아이 러브 아이스 아메리카노 ..!’ Oh! No, No. 시장바구니에 커피 봉다리를 집어넣은 여자 빈 병에 커피를 채우고 커피물을 끓이는 여자 커피물이 끓는 동안 손톱을 깎는 여자 쇼팽을 들으면서 발톱마저 깎는 여자 커피물을 바닥 내고 다시 물을 올리는 여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물을 두 번 끓이는 여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저 여자 손톱을 깎으며 눈물을 보였던 여자 커피 한 봉다리로 장을 본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던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서 오래 울었던 그 여자 빨리 건너지 않으면 더 오래 울게 될 거야 아직 건너지는 마 좀 더 울어야 되지 않겠어? 커피 봉다리를 들고 오래 울고 있었던 여자 이제 커피는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여자 오래 서서 울게 될 여자 신호등이 될 저 여자 손톱 발톱이 마구 자랄 여자 - 이 근화 시.. 더보기
문득,, 병상에 누워서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 더보기
‘꽃‘ 처럼 다가온 사람, ‘체향’으로 다가온 시 - 이 문재 시.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