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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숲에 들다

El Condor Pasa..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장석남] 점등시간 77번 좌석버스를 탔다 나는 페루에 가는 것이다 시드는 화환처럼 해가 진다 바람은 저녁 내내 창 유리의 흰 페인트를 벗겨내고 있다 이른 산책의 별이 하나 비닐 봉지처럼 떴다 허공에 걸려 있는 푸른 풍금 소리들 나를 미행하는 이 깡마른 적막도 끝내 페루까지 동행하리라 철망 위에 앉아 우는 새 새의 울음속에 등불이 하나 내어 걸린다 페루의 유일한 저녁 불빛 밤새 파도들은 불빛으로 낮게 포복해 몰려와 몸을 씻고 있다 불빛을 따라간 한 목숨을 씻어주고 있다 나는 내내 페루에 가고 있는 것이다 새들의 페루 [신용목] 새의 둥지에는 지붕이 없다 죽지에 부리를 묻고 폭우를 받아내는 고독, 젖었다 마르는 깃털의 고요가 날개를 키웠으리라 그리고 순간의 운명을 업고 온다 도심 .. 더보기
11월의 시 / *행복한 사람은 시를 쓰지 않는다. 종일 놀다 돌아와 퍼렇게 언 손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뒤뜰 겨울나무 그늘이 그새 자라 좍좍 탄력 있는 껌 씹는 소리를 내요 몸 없는 정령들 버젓이 어깨죽지에 붙어 있고 북방의 자작나무가 귀를 파먹으며 물기 거두어 간 바람 소리를 퉁겨냅니다 시를 쓰려는 시간은 흙 속에 파묻힌 묵음들도 날카로운 비명으로 지납니다 시를 그만둬야 할까요 고수레 고수레 굿을 올려야 할까요 (어쩌면 고흐는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시를 썼는지 몰라요 시를 쓰느라 그렇게 귀가 가려웠던 것 동네북 같은 세상에 진저리가 난 거지요) 귀를 막을지 눈을 감을지 더 높은 소리를 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쓰지 않고도 잠들 수 없는...... 발굴할 수 없는 슬픔들을 별수 없이 또 궁리합니다 회칠 벗겨진 하늘이 우툴두툴 비를 데려오는 소리 .. 더보기
공원에서 / 쟈끄 프로베르 수백만년 수천만년도 .... 모자라리라 그 영원의 한 순간을 다 말하려면 네가 내게 입맞춘 내가 네게 입맞춘 파리의 몽쑤리 공원에서의 겨울 햇빛 속 어느 아침 파리 지구속의 우주속의 별에서. -쟈끄 프로베르 '공원에서' 모두 20060821, 번역. *대학시절 대학노트의 한귀퉁이에 랭보나 보들레르, 쟈끄 프로베르의 싯귀를 미숙하게나마 번역하여 적어 놓고는 하였다. 지금은 찾은 것도 적고,, 다수가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최근에 다시 재 번역하여 다시금 적어 놓고있다. 이 시 '공원에서'는 어느 블로거가 번역해 놓은 것이 내 뉘앙스에는 맞지 않아 2006년의 8월에 '엠파스 블로그, 홍수염 - 이미지.. love'에 재번역 해 적어 놓은 것이다. 외국의 시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 두렵다. 다시금 적어 본.. 더보기
거짓말. 빨간 거짓말을 사랑했네 [조미희] 새빨간 것들을 사랑했네 선명해서 긍정이 되는 것들 피로회복제 같은 말, 나만 믿어 이런 말들 폭설처럼 행복이 몰려드는 착시 현상 참말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때 빨간 거짓말은 그물망을 펼쳐 나를 받아내네 앳된 점집 여자의 반말에도 귀가 경건해지는 새하얀 의심의 눈동자에 자주 찾아오는 불신과 절망은 무채색 슬그머니 옆에 앉아 웃다가 순식간에 내 목을 분지르지 빨강은 옆집 오빠처럼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걱정은 그렇게 노래 뒤에 기대 있지만 거짓말은 가끔 다정을 흉내 내네 점집 여자가 빨간 입술로 말하네 1월엔 돈거래를 조심하고 7, 8월엔 물가를 조심하고 12월에는 뜻하지 않은 횡재수나 손재수가 들었다고 아무래도 점집 여자는 시인인 것 같아 뻔.. 더보기
오늘의 시, 한 편. 내가 창가에 앉아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쪽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게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의 점심식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는 말로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 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 개의 손톱도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지런히 열을 세며 있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말이 너무.. 더보기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카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다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다이아나 루먼스 시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 더보기
오늘, 걸어가는 이 하루... 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숲 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으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리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조용한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의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불어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어둠 속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 더보기
Not going anywhere / Keren ann * Not going anywhere - Keren ann This is why I always wonder 이게 내가 항상 궁금해 하는 이유에요 I'm a pond full of regrets 난 후회로 가득찬 연못이에요 I always try to not remember rather than forget 난 잊으려 하기보다 기억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해요 ​ This is why I always whisper 이게 내가 항상 속삭이는 이유에요 When vagabonds are passing by 방랑자들이 스쳐갈 때는 I tend to keep myself away from their goodbyes 나는 그들과 작별인사로부터 멀어지려고 해요 ​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