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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예인과 여인.

 

 



이 세상 뜻있는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루밤 유숙하고 갈 만하다
허름한 민박집도 많지만
그러나 정작 들러야 할 민박집은 한 군데
지금도 가얏고 소리 끊이지 않고 큰비녀 옥비녀를 쫒았는데
머리 풀기를 기다리는 여인
서해 뻘밭을 끓이는 아아 후끈 이는 갯내음
변산 해수욕장을 조금만 비껴 오르면
부안읍 서림공원 그 아랫마을 공동묘지
바다우렁이 속 같은 고등껍질 속에
한숨 같은 그녀의 등불이 걸려 있다
온몸의 근질근질한 피는 서해 노을속에 뿌리고
서너 물발 간드러진 물살에 창창하게 피는 낚싯줄
이 세상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룻밤 그녀의 집에 들러 불끄고 갈 만하다
'이화우 훝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하던 님'
뻘 속에 코를 처박고 싶은 여름날
아아,
이 후끈 이는 갯내음.


- 송수권 시 '이매창의 무덤 앞에서' 모두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당겨
끝내는 비단 저고리 찢어 놓았지,
비단저고리 아까워 그러는거 아니어요
님이주신 정마저 찢어질까 두려워 그렇지.

- 이매창 지음 ' 취하신 님 '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가면 이매창의 묘가 있다. 1983년 8. 24. 도 에서는 이매창의 무덤을 전라북도 기념물 65호로 지정했다. 부안에서는 백발 노인에서 나이어린 꼬마까지 '매창 할머니 '라고 부르며 그녀의 한시를 읊을 정도로 부안 사람들이 매창에게 갖은 정은 각별하다고 한다. 시대를 이어 사람들의 진심어린 애정과 관심을 받는 비결은 그녀의 삶이 여인으로서나 예인으로서 한 품격을 이륐기 때문이라 믿는다. 젋은시절 외국 손님들을 몇 해 접대한 적이 있다. 그때에 간접적으로 접해 보았던 몇 남지 않은 옛 기생들은 서울의 소위 1% 와는 전혀 다른 품격으로 내게 충격을 주었었다. 송수권의 시를 읽다가 그 초로의 아름답던 품격의 예인들이 생각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돈으로, 금전으로 모든것이 가능하다는 시대에 자신을 알아주고, 컨디션에 따라 최선의 공연을 보여 줄 수 있을 때에만 날을 잡던 그 '프로정신'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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