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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능소화의 추억. 이제는 고흐가 싫다 한때는 그리도 사랑했으나 이제는 노랗게 불타는 해바라기가 싫다 비틀린 채 타오르는 측백나무도 싫고 그놈의 붉은 수염이 싫다 불이 쌓여 생긴 병일까 갈수록 목마름이 더해가고 물을 찾고 물을 들이키며 이제는 고흐가 싫다 그놈의 붉은 수염이 싫다 평생을 자신에게 성실했던 자여 - 윤 재철 시 ‘소갈병’ - 한때는 시골의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능소화’ 국민학교 졸업 후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꽃이 였는데,, 대학시절 마이산을 찾았다가 절벽을 따라 거대한 규모의 능소화가 흡착근을 뻗어 올라가면서 온 절벽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풍경은 직접 눈으로 봐서 그 경이로움을 맘껏 즐길 수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나무의 능소화 라고 말할 수 있는.. 더보기
집보다는 길에서, 집에서보다는 길에서 가고 싶다. 톨스토이처럼 한겨울 오후 여든두 살 몸에 배낭 메고 양편에 침엽수들 눈을 쓰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눈 혼자 터벅터벅 걸어 기차역에 나가겠다가 아니라 마지막 쑥부쟁이 얼굴 몇 남은 길섶, 아치형으로 허리 휘어 흐르는 강물 가을이 아무리 깊어도 흘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 뼈대 그 앞에 멎어 있는 어슬어슬 세상. 어슬어슬, 아 이게 시간의 속마음! 예수도 미륵도 매운탕집도 없는 시간 속을 캄캄해질 때까지 마냥 걸어. - 황동규 시 ‘집보다는 길에서‘ *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 젊은시절 부터, 산을 좋아 했다.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북한산, 관악산을 주말마다 오르곤 했다. 군대에 가서 3보 이상은 탑승 이라는 포병 이었는데 ‘시범부대’로 뽑혀서 .. 더보기
에스프레소 한잔.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뀅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닐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 더보기
* 정진(精進). 오백년 천년을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가슴께에 칠해진 어지러운 원색의 빛깔들 여름이면 바다처럼 펼쳐진 산줄기에 나누어주고 가을이면 새빨간 빛깔들 뒷산 숲에 던져주고 나머지 짙게 덧칠해진 단청빛마저 마음에 걸려 바람에 던져주고 하늘에 풀어주고 세월 속에 가장 때묻지 않은 얼굴빛으로 엷어져 본래 제가 지녔던 나무 빛깔로 돌아여며 겸허해지고 담백하게 욕심을 벗어 더욱 굳세어지고 그렇게 버리면서 육백년을 지나왔으리니 백년도 백년의 절반도 다 못 살면서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빛깔을 지니고자 더 큰 목소리와 더욱 단단한 기둥을 거느리고자 기를 쓰다가 허세부리다가 우리들은 사바세상 티끌과 먼지로 사라지나니 진정 오래오래 사는 길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요란한 파격은 애당초 마음에 두지 않았던 맞배지붕은 보여주.. 더보기
‘배 고픈’ 식당/슬픈 ‘허기’ 밥은 왜 따스해야 맛나는가 그건 밥을 위해 애쓴 이의 마음이 뜸 들어 있어서이다 찬밥은 왜 싫은가 밥을 애타게 그리다가 식어버린 아픔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상 먹어야 하는 밥은 울렁이는 허기를 좇아주기도 하지만 자주 목이 메이게도 하는 영물이다. - 박 이현 시 ‘밥3’모두 * 성의: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뜻. - 하루에 한끼는 ‘매식’을 하게 되는데 ‘내돈내산’이라는 말도 있는데 내돈 내고 밥을 먹는데도 50%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비싼 돈’이 너무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주에 두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코스내에 가끔 들르는 식당 두곳이 ‘다시 가고싶지 않은 식당’으로 리스트 업이 되었다. 한곳은 ‘우리동네 국수집’이라는 국수집.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입맛이 떨어지면 비빔국수, .. 더보기
높고 푸르른 날의 시 -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 상병 시 ‘귀촌’모두 _《귀천 Back to Heaven》/도서출판 답게, 2001 * Back to Heaven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 더보기
거울 앞에 나. 오늘도 내 안에 간직한 거울을 닦는다. 먼지가 덮인 거울을 깨끗이 닦으며 잠시 내가 거울을 잊었구나. 새 아파트로 이사와 현관 앞에 전신거울을 달며 내 안에 간직했던 거울을 생각해냈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에 거울을 닦는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눈빛을 다듬는다. 눈빛에 깊이를 가늠해 본다. 관상을 찬찬히 보며 관상을 바로 잡는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 바로 내 안에 거울이다. - 이 현주 시 ‘거울’모두 * 살면서 거울을 딱는것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삶이 순탄치 않을 때의 거울은 내 마음처럼 무엇으로 뿌옇게 얼룩이 지어 내 얼굴이 흐릿하게 지쳐 보입니다. 때로는 거울을 딱습니다. 선명해 보이는 내 얼굴이 현실인듯 반가와 물을 뿌리고 더욱 깨끗하고 선명하게 .. 더보기
31. 삶의 美笑. 파도처럼,, 삶은 끝임없이 이어진다. 가지에서 가지로 나무에서 나무로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아니 저승에서 이승으로 새들은 즐거이 날아 오른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대자대비(大慈大悲)처럼 가지 끝에서 하늘 끝에서...... 저것 보아라, 오늘 따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 간다. -천상병시 '새'전문 *구름이 몰려왔으나 아직 비는 내리지 않으니,, 하늘아래 바람이 불고 있는 모습이 만남을 뜻하는 구괘의 형상이다.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은둔을 뜻하는 둔괘의 형상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소인을 멀리하되, 악이 아니라 위엄으로 그들을 대한다. -둔(遯) -진실한 마음은 삶의 양념이다. 하지만 양념만 가지고는 어떤 음식도 만들 수 없다. 하루하루를 건강하고 희망차게 꾸려가고자 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