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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조금은 무더운 봄 햇살속을 홀로 걸으며.....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모였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들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류시화 시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모두








놀토를 맞아 보은의 시골집에 꽃이 만발하다는 소식에, 엉덩이가 들썩인 마늘님을 모처럼 아이들도 쉬라고 딸려보내고,, 이것저것 밀렸던 일처리를 마치고 입맛이 없어 미루어 두었던 점심을 3시를 넘기고 찾아 먹는다. 가끔 들리는 단골 국수집엔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만원이다. 귀퉁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무더워진 날씨에 잔치국수 보다는 비빔국수를 시킨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면요리를 좋아 하지만,, 더위를 타는 여름이 오면 유난히 냉면이나 비빔국수를 좋아해 구박을 당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면에 대한 애정은 멈출수 없다. 매콤한 비빕국수를 땀을 흠뻑 흘리며 다 먹어치우고,, 식탁위에 쌓인 땀딱은 휴지를 집어들어 버리고는 물을 두어컵,,, 그리고 여름 날씨같이 무더워진 길을 건너며 집으로 향하다 최소 4끼는 내가 챙겨 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귀찮지만 동네 근처의 'L 마트'로 향한다. 

4시가 가까운 시각,,, 생각보다 토요일 이른시간 임에도 대형매장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바구니를 들려다 카트로 바꾸고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속에 나도 묻혀 장을 본다. 스낵류를 지나쳐 청과류에서 씨없는 새콤한 '청포도'도 한팩을 사고, 수산물 근처에선 입맛을 돋구는 멍게와 해삼,, 망설이다 멍게를 한봉지 집어들었는데,, 별로 물이 안좋은 듯 뿌옇다. 여기저기 육류코너의 시식코너에선 불고기에 갈비로 유혹을 하는데,, 그냥 Pass, 하다가 '족발'을 썰어놓은 집 앞에서 '딱' 브레이크가 걸렸다. 세일하는 1만원짜리로 한팩,, 두끼는 매식을 하려고 했는데,,, 그도 귀찮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짜빠게티' 한묶음 5개, 주류 코너에 들리니 봄나들이 준비하는 사람들로 대 만원이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차안에서 먹는다며 맥주며 소주가 '한박스'씩 이다! ㅎㅎㅎ,,, ^^;;; 나도 산에가면 먹기좋은 '이동 막걸리' 한 팩에 예비로 '소주 4팩'을 예비로 사 둔다. 물이 안 좋은 멍게는 다시 제자리에 두고 계산을 하고 빈박스에 물건을 담아 묶는다.

두불록 남짓의 거리를 늘청늘청 걷는데 길가엔 심어놓은 벗꽃들이 소담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마와 등에 차오르는 땀에 길가의 벤치에 박스를 내려놓고 잠시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앞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한 젊은 아버지가 5살쯤된 딸을 안고 가다가 힘들어 걸어가라며 내려 놓으니 칭얼대고 손에 든 장난감 꾸러미로 달래다 박스를 뜯어 꺼내주자 그제야 앞서며 걸어간다. 그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몸을 일으켜 집으로 향한다. 텅빈 집에는 '생협'에서 배달해 온 식료품들이 현관앞에 쌓여있다. 물품들을 정리하여 냉장고에 나누어 놓고나니,, 큰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8시가 가까운 시간,, "예정한 공부는 마치고 시골집에서 꽃구경 하고 맛있는것 많이 먹고 오라"하니 "아빠는 식사하셨냐?" 고 물어온다, "그래 이제 먹어야지" 하고, "잘 쉬다 오라" 하고 전화를 끊는다. 간단히 땀흘린 몸을 씻어내고 포도를 씻어 한송이, 족발을 나누어 한접시, 이동 막걸리를 나누어 반병,, 피곤하니 입맛이 없다. 12시를 앞에두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조용한 적막에 잠긴 집안, 한번도 깨지 않고 '보아 구렁이' 처럼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소망해 본다. 편안하고 따스한, '죽음보다 깊은 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