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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뻔한 거짓말.


뻔한 '거짓말' - '인생'이란 거울,,, 여행
조회(367)
이미지..,love. | 2008/08/06 (수)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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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色)이 바래고 희미해진 그림처럼 우리의 '존재감'도 희미해 진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약속은.....


 
 
 
 
  보일러를 녹이려고 옥상에 오른다
 
  하루 내내 이가 시리도록 일한 빨래집게들. 서걱거
리는 옷가지들을 다 건네주고 빨래줄 한가운데에 모여
있다. 빨래줄에도 아랫목이 있나? 오목하게 모두 모여
찬바람을 비끼고 있다. 언 뼈를 부닥뜨리며 겨울밤을
건너가고 있다.
 
  손전등을 밤하늘에 비춘다. 어리둥절 비틀거리던
기둥 하나가 허공에 선다. 그 불기둥을 따라 추운 별
들이 내려온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
돌이다.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지, 한
사내가 쓴웃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 방 한가운데 작은 이불 속에도 빨래집게 같은
다리들이 아랫목을 만들고 있다.
  차갑지? 내 시린 무릎을 디민다.
  별꼴이야.
  별꼴이라고? 그렇지. 가족이 무릎을 맞대면 별꼴이
되지.
 
  그 누가 빨래집게들의 가슴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채
워줬나? 깊은 밤 한 사내가 누군가의 목덜미를 쓰다
듬는다. 빨래집게는 그 팽팽한 철사 목걸이의 힘으로
이 악물고 일만 하나?
  끄응, 별꼴이 돌아눕는다.
  기름 떨어진 보일러처럼, 거칠게 바람이 빠진다.
 
 
 
  -이정록 시 '겨울밤'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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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水面)에 비친 모습을 보며 되 묻는다.
          넌,,, 누구냐!?!.......

 
 
 
-군에서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고나서 알게된 친구가 하나 있다. 한씨성을 쓰는 그 친구는 고교시절 같은 교회를 다니던 친구의 친구였는데,, 모임에서 서로 마음이 통해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당시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명동의 '미도파'라는 백화점에 수입 가전부에 직장을 두고 있었는데,, 학교에 복학하여 4학년 이었던 나는 그친구 덕에 백화점 이라는 곳에 자주 가보게 되었다. 당시에 나도 그 친구도 의정부 라는 곳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내친구나 그 친구나 모두 주당인지라 그당시엔 12, 13번 이라는 버스 두대와 좌석 112, 113번이 종로 5가에서 의정부까지 왕래를 했던 바, 밤늦게 술이 얼큰하여 헐레벌떡 막차를 타러 달려오니 텅빈 정류장에 내 친구가 홀로 서 있었고,, 그 친구가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 했는데 이미 막차는 떠나고 지하철 출구옆에 있는 총알택시 합승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같이 승차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는 동네가 같고 나이도 비슷하여 친구가 되었다 한다.
 
-몇번 모임에서 만나 절친해진 이 친구는 편부 슬하에 형과 세식구가 생활하고 있었는데,, 집안 형편상 상고를 나와 백화점에 취업하여 열심히 생활하는 성실한 친구였다. 나역시 비슷한 처지로 힘겨운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그친구는 사내커플로 당시의 애인이 수입 가전부 앞의 레코드와 CD를 판매하는 코너를 맡고 있었다. 당시에 솔로 였던 나는 그들의 데이트에도 몇번 끼어서 만났고, K신문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에는 그 친구의 카드를 빌려 그당시의 미도파에서 거금을 주고 '마르시아노'라는 당시에는 이탈리아 풍의 비싼 양복을 거금을 주고 할부로 산,, 그리고 합격이 되었고 다달이 6개월만에 그 할부금을 갚은 추억이 있다. 당시에 용돈을 주듯 월급을 받으면 백화점에 들르곤 했는데,그때마다 근처의 무교동 골뱅이 집에서 소주와 함께 먹던 골뱅이 무침과 계란말이의 환상적인 풍미를 기억한다.
 
-후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집을 차렸을 때에 집들이를 가서,, 새색시가 밥을 퍼 주는데,, 밥을 하고 처음푼 밥을 남편앞에 놓았는데 친구가 그 밥을 내 앞에 놓았고 다시 밥 한그릇을 퍼서 밥그릇을 바꾸는 모습에서,, 가장 영양이 있는 밥의 부분을 신랑에게 챙겨 주고자 하는 모습에서 속으로 미소짓던 기억이 있다. 후에 명동의 미도파가 딴곳에 팔리고 직원들도 뿔뿔히 헤어지고,, 성실했던 그 친구도 한동안 어려웠으나 그 일을 계기로 독립하여 전자제품 영업을 하였다. 주로 전국의 모텔을 다니며 영업을 하였는 바, 당시에 오픈하는 경기도 일대의 모텔은 모두 방문한,, 나역시 계열사의 호텔이나 아는 곳은 인맥을 동원해 모두 소개해 주었었다. 당시에 어렵던 집안 형편에 부인은 집에서 구슬로 목걸이를 끼우는 부업을 하기 시작했고 5~6년 전에 방문한 친구의 APT 에는,,지금은 제법 살만한데도 그 부업을 손에 놓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제법 성공하여 모교에서 행사가 열리면 참조도 하고 시상도 한다고 하는데,, 제법 지역유지 소리를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세상에는 크게 3가지 타입의 여자들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직업을 가지고 있던, 아니던,, '남자를 지배 하려는 여자, 남자에게 지배 당하는 여자, 남자에게 잘 맞쳐 주면서 슬기롭게 리드하는 여자'... 대부분의 여자는 첫번째와 두번째가 많으니,,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경제권을 상실하면,, 그 진면목이 나타나는데,, 남자들의 '약한 모습'이나 '넋두리'가 나타나면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리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니,, 남자들의 세상살이가 팍팍해 졌다. 세상은 변해가고 남자들이 여자들이 변해가는 만큼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면도 있으니,, 이를 어찌 여자들만을 탓할까 만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세상탓에 근자에 친구들이 하나, 둘씩 이혼하거나 사연들이 많은데,, 나 역시 친구들에게 떳떳한 입장은 아니니,, 세상사는데,, 가족과 자식은 때로 '올가미'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나역시 옛날에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라는 약속을 했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ㅎㅎㅎ,,,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죄인은 역시 남자던가!?!.... 변해버린 마눌님을 불쌍히 여기고, 내 무능을 탓하면서 그래도 새롭게 새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남자의 몫인 듯,,,  마누라가 무슨 죄인가?! 내가 '쥑일놈'이지.....
 
 
-세상에는 정답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타협하고, 굽히고, 그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도 있으니,,, 양심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내 자신을 속이며 까지 살 수는 없겠지. 내 가슴 속에 '달'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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