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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다시 읽는,, 강은교 시인.

비가 내리니,, 벚꽃잎도 비로 내리겠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 은교 시 ‘우리가 물이 되여’모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 강 은교 시 ‘너를 사랑한다’모두
      * 초록거미의 사랑, 창비, 2006






  그 벽에는 못 하나가 쳐져 있고 거기 내 외투 한 자락이 걸려 있습니다.

  내 외투 한 자락에 덮여 하늘이 조금 팔락거립니다.

  거기 손을 내밀어 봅니다. 창틀이 긴장합니다. 창틀의 근육에 걸려 내 외투
자락이 빳빳하게 되었습니다.

  그 벽에는 못 하나가 쳐져 있고 거기 내 외투 한 자락이 걸려 있습니다.
내 외투 한 자락에 덮여 하늘이 조금 더 팔락거립니다.

   그 벽에는 못 하나가 쳐져 있고 거기 내 외투 한 자락이 걸려 있습니다.

  그 벽에는 못 하나가

  아야아, 못 하나가



- 강 은교 시 ‘비가( 悲歌)’모두
      *태백 1월호, 2017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 은교 시 ‘사랑법: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모두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린다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시 '숲'모두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불쑥 나타날 너의 힘을 기다린다
너의 힘이 심줄들을 부드럽게 하고
너의 힘이 핏대들을 쓰다듬으며
너의 힘이 눈부신 햇살처럼
민들레 노란 꽃잎 속으로 나를 끌고 갈 때
내가 노란 민들레 속살로 물들고 말 때
얼음의 혓바닥이 흔들거리며
얼음의 왼발이 사라지고
얼음의 왼다리가 사라지고
이윽고
얼음의 오른발이 사라지고
얼음의 오른다리가 사라지고
낮게 낮게 흐르는 눈물이 시간이 될 때
그때를 기다린다
아무도 몰래 너를
이 바람 찬 세상에서


- 강 은교 시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모두



* “ 시는 생활이다“ 2009년 7월의 어느날 ‘시 사랑 까페’의 50문 50 답에 써 놓은 글귀이다. 끝없이 반복되고 비슷하게 마모되는 생활속에 사는 삶이 모두가 시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강은교 시인의 시를 좋아 했었다. 자연을 노래하고 생활에 충실하여 내여 놓는 시 한편, 한편이 내 생활과 주위의 풍경에 동화되여 갔다면,, 과장일까?!.., 사람은 때로 미묘한 감정의 선이 맞 닿을 때가 존재한다. 수 없이 명명하는 시인들과 함께,, 내가 끝임없이 생활하며 시를 읽고 이유이기도 하다.



너와 나의 감정의 선이 맞 닿을 때,, 나는 비로서 ‘나’를 다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