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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사월 초파일 傳燈寺에서 淨水寺까지 공양드리러 가는 보살님 차를 얻어 탔다 토마토 가지 호박 늦은 모종을 안고 십 리를 더 걸어와 흙 파고 물 붓고 뿌리에 마지막 햇살 넣고 흙 덮고 해도 燈처럼 물(水)처럼 날이 맑아 개밥그릇을 말갛게 닦아주고 싶었다 부처님 오신 날인데 나도 수돗가에 앉아 도(陶)를 닦았다 고개 갸웃갸웃 쳐다보던 흰 개 없다니까! 그 그림자가 그릇의 맛이야 수백 번 혓바닥으로 핥아도 아직 지울 수 햇살이 담길수록 그릇이 가벼웠다 - 함 민복 시 ‘개밥그릇‘ * 시집 : 말랑말랑한 힘 - 오래전에, 사월 초파일 ’ 부처님 오신 날‘에 결혼식을 했다. 당시에 난 기독교를 믿었고 교회 고등부 고3 교사였고, 아내의 집안은 불교도 집안이었다. 종교적 갈등 없이 서로의 종교에 ’ 진실‘하다는 이유.. 더보기
가문비 나무 아래의 연주, 죽은 사람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악기를 하나쯤 다루고 싶어서 대여점에 들러 첼로를 빌렸다 48인치짜리 첼로는 생각보다 육중하였고 나는 그것을 겨우 끌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소파 옆에 세워둔 첼로는 공습경보를 들은 사람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첼로를 이루는 가문비나무는 추운 땅에서 자란 것일수록 좋은 음을 낸다고 들었다 촘촘한 흠을 가진 나무가 인간의 지문 아래 불가사의한 저음을 내는 순간 더운 음악회장에서 깨어난 소빙하기의 음표들이 빛을 향해 솟구치는 광경을 죽은 사람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가슴에 첼로를 대고 활을 그었다 첼로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내 몸의 윤곽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얀 나방이 숲으로 떠나가는 깊은 밤 수목 한계선에서 빽빽하게 자란 검은 나무 아래 영혼의 손가락 끝에 홀연.. 더보기
유 형진 / 피터래빗 저격 사건 - ‘모모’가 생각나~ 나에겐 고향이 없지 고향을 잃어버린 것도, 잊은 것도 아닌, 그냥 없을 뿐이야 그를 만난 건 내가 Time seller Inc. 라는 회사에서 일할 때였지 그곳은 시간이 없는 자들에게 시간을 파는 일을 해 그것은 불법이지 그곳의 시간들은 대부분 훔친 것들이거든 나는 시간의 장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지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시간을 사줄 수 없겠냐고 문의를 해왔어 그는 오자마자 고향 이야기를 꺼냈어 그의 고향은 남쪽의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고향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의 시간을 팔고 싶다고 했어 들어보니 사줄 가치도 없는 흔해빠진 시간을 들고 와선 아주 비싼 가격을 부르더군 그는 벨벳 정장 차림에 고급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눈동자가 깊었어 그냥 돌려보내려다가 그런 시간 한 개쯤 사.. 더보기
4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며,, - ‘시 사랑 부산정모’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 문재 시 ‘농담 ‘ * 제국 호텔, 문학동네, 2004. * 2024. April. 20. 부산 시사랑 정모. 오프상으로 접하던 그리운 ‘시민’들을 만났다. 운치있게 안개비가 내리던 날에 4시간 15분 만에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시간상 pm03 시 모임이라 내자는 상큼하게 손을 흔들며 여행을 떠났고, 부산 지하철운 처음이 아니라 자신있게 찾아 승차 했다. 토요일 이지만 다소 붑비는 전철안,.. 더보기
종이감옥 / 나 희덕 시. 그러니까 여기, 누구나 불을 끄고 켤 수 있는 이 방에서, 언제든 문을 잠그고 나갈 수 있는 이 방에서, 그토록 오래 웅크리고 있었다니 묽어가는 피를 잉크로 충전하면서 책으로 가득찬 벽들과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서류 더미들 속에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겨 다니며 종이 부스러기나 삼키며 살아왔다니 이 감옥은 안전하고 자유로워 방문객들은 감옥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지 간수조차 사라져버렸지 나를 유폐한 사실도 잊은 채 여기서 시는 점점 상형문자에 가까워져 간다 입안에는 말 대신 흙이 버석거리고 종이에 박힌 활자들처럼 아무래도 제 발로 걸어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썩어문드러지든지 말라비틀어지든지 벽돌집이 순식간에 벽돌무덤이 되는 것처럼 종이벽이 무너져내리고 잔해 속에서 발굴될 얼굴 .. 더보기
홍매화가 피었네! 그해 겨울 유배 가던 당신이 잠시 바라본 홍매화 흙 있다고 물 있다고 아무데나 막 피는 게 아니라 전라도 구례 땅 화엄사 마당에만 핀다고 하는데 대웅전 비로자나불 봐야 뿌리를 내린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막 몸을 부린 것 같애 그때 당신이 한겨울 홍매화 가지 어루만지며 뭐라고 하셨는지 따뜻한 햇살 내린다고 단비 적신다고 아무데나 제 속내 보이지 않는다는데 꽃만 피었다 갈 뿐 열매 같은 것은 맺을 생각도 않는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내 알몸 다 보여주고 온 것 같애 매화 한 떨기가 알아 버린 육체의 경지를 나 이렇게 오래 더러워졌는데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같애 수많은 잎 매달고 언제까지 무성해지려는 나, 열매 맺지 않으려고 잎 나기도 전에 꽃부터 피워 올리는 홍매화 겨울나기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 더보기
2월의 시 - 2월의 동백, 김 승희 시. 2월은 좀 무언가가 부족한 달 동백꽃은 한떨기 한떨기 허공으로 툭 떨어진다 떨어져서도 꿈틀대며 며칠을 살아 있는 꽃 모가지 낙태와 존엄사와 동반자살, 그런 무거운 낱말을 품고 선홍빛 꽃잎, 초록색 잎사귀 툭, 동백꽃은 모가지째로 떨어져 죽는다 부활이란 말을 몰라 단번에 죽음을 관통한다 더 이상 퇴로는 없었다 칼로 목을 자르자 하얀 피가 한길이나 솟구치고 캄캄해진 천지에 붉은 꽃비가 내렸다는 겨울 속의 봄날 산 채로 모가지가 떨어지고 모가지째로 허공을 긋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피의 기운으로 땅과 꽃봉오리는 꿈틀대고 한떨기 한떨기가 피렌체 르네상스 같은 동백꽃, 너무 아름다워 무서웠던 파란 하늘 아래 꽃의 성모 마리아, 빛나는 한채의 두오모 성당의 머리를 들고 툭, 무겁게 떨어지는 동백꽃 여한 없이 살았다.. 더보기
내 가슴의 노래 - 시, 더하여 내 ‘어리석음’. 사랑스런 프랑다스의 소년과 함께 벨지움의 들판에서 나는 藝術의 말을 타고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손을 들어 내가 그린 그림의 얼굴을 찢고 또 찢고 울고 있었고, 나는 당황한 現代의 이마를 바로잡으며 캔버스에 물빛 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나의 의학 상식으로서는 그림은 아름답기만 하면 되었다. 그림은 거칠어서도 안되고 또 주제넘게 말을 해서도 안되었다. 소년은 앞머리를 날리며 귀엽게, 귀엽게 나무피리를 깍고 그의 귀는 바람에 날리는 銀잎삭.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며 하늘의 물감이 부족하다고, 화폭 아래에는 반드시 江이 흘러야 하고 또 꽃을 길러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現代의 고장난 수신기와 목마름. 그것이 어찌 내 罪일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내 罪라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