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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人生,, 그 쓸쓸함 - 데라코타/권진규




    - 가사를 걸친 '자소상' 69~70년, 고려대박물관.





흩어진 추억을 조립해본다

대학병원서 조립 막 끝낸 인골(人骨)이

배냇짓을 했다.

가랑비 속을

전람회에 선보일 테라코타를 태운 리어카를 끌고

권진규가 미아리 집을 떠나 대학병원 앞을 거쳐

전람회장으로 오고 있었다

경복궁 뒤론 선명한 무지개.

리어카 짐들이 무지개 보려고 목을 빼고

두상(頭象)하나가 벙긋 솟았다.

눈을 밖으로 곧바로 뜨고 앞을 보며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

인간 속에는 심지가 있는가

상처가 있는가?

두상이 더 오르려 하자 권진규가 얼른 목에 끈을 맸다.

권진규가 테라코타 되었다.

 

 

속이 빈 테라코타가

인간의 속에 대해 속의 말을 한다.

인간에게 또 어떤 다른 속이 있었던가?

 


  -  황동규 시 '권진규의 테라코타' 모두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 지성사)

 

73 년, 자신의 작품 '자소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성북동 아틀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권진규, 그래서 혹자는 작품 보다는 권진규의 삶에 많은 비중을 두었지만 52세에 생을 스스로 마감한 권진규의 삶,, 그 보다는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30년 연하의 제자를 대한 사랑을 이루지 못해,, 또한 한국에서는 별로 인정에 주지 않았던 권진규의 작품. 그 모든 것이 권진규 에게는 괴로움 이였을까?

  * 테라코타 - 양질의 점토로 구워낸 토기류.  원어는 구운 흙[粘土]을 뜻하나, 일반적으로는 미술적 조각 작품의 소재






    - '지원의 얼굴' 32*27*49cm, 가나 미술관.



- 미술대학 시절 친구였다는 일본인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는 그의 친지에게 '권진규의 예술을 경외하는 화백의 마음은 처절한 격렬함을 감추고 있어 끊임없이 주위를 압도'하며 권진규의 세계를 설파했다고 한다.

『원시의 숨결, 나는 그것을 권진규의 조각에서 강하게 느낀다. 원시의 숨결이란 가장 원초적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이며, 또한 생명이 지니고 있는 슬픔이다. 그것을 허용한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 작품의 표현됨에 있어서 인위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인간 그 자체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 들어 혼이 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보통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아마 그것은 천부적인 것일 터이다. 생명의 깊숙한 곳에서 넘쳐 흐르는 인간의 진실된 슬픔이라고 할까. 살아가는 것의 눈물이라고 할까. 그러한 생명의 근원이 작품을 저변에서 지탱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것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대단함이 있다. 나는 정말 슬픈 사람의 혼의 근원을 그의 작품에서 보는데 그것조차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느긋함'이며 '있는 그대로'의 무구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것은 참된 용기를 가진 용감한 예술가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강렬한 자기를 좀 더 강력한 무언가의 힘으로 멸각시키고 있다. 나는 권진규를 야성에 바탕을 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슬픔을 삼키고,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뿐이다. 이러한 주장을 절제하는 동양적인 모습이 근대 유럽의 조각과 현저히 다른 점이다. 로뎅, 부르델도 훌륭하나 주장하는 바가 보인다. 지성과 고뇌도 보인다. 그러나 권진규는 그것들이작품을 지탱해주고는 있지만 전부 숨겨져 표면에는 보이지 않는다. 자기자신 안에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아시아적인 깊은 교양을 느낀다. 그러한 요인이 중첩되어 그의 조각에 유래가 드믄 고귀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고귀성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세계적 레벨의 예술로 이룩하게 한 근본이다. 원시의 숨결을 고귀성으로서 표현할 수 있었던 권진규는 아시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권진규를 이토록 깊이 이해하는 도시마 야스마사도 대단하고, 그런 친구를 둔 권진규가 부럽기도 하다.
 



    - 생전의 모습과 그의 무사시노 미술대학 졸업작품, 1953 년 작 '나부'




조각사에 한획을 그은 '권진규 展' (2009. 12.22~2010. 02.28) 이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 큐레이터의 작품진열 문제로 크고 작은 잡음이 들리고 있는 그의 전시회,, 그의 작품을 아끼는 사람은 좀 더 작품을 잘 '느끼고' 싶은 마음에 큐레이터를 찾아 '조언'을 했는데, 큐레이터는 관객의 '수준'을 운운 했다니... 뜻깊은 전시회에 유감이다. 일본과 한국에 있는 그의 작품 160 여 점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모든 '예술가'는 작품으로 그의 세계를 말하노니,, 그의 남겨진 작품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달란트와 천직이 있는데 각자의 재주대로 세상을 살수 있으면 행복할까!?.... 왠지, 전시회장을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쓸쓸했다.




   
                                                                        - 곤스케,34*22*21cm 67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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