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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크로키....


크로키 - 내 삶의 '데모 테잎'
조회(9294)
이미지..,love. | 2005/11/25 (금)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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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뜻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롭트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낳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시 '늙어가는 아내에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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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우리집은 장충동에서 약수동으로 이사를 했다. 어린시절 주택으로 둘러싸인 동네를
떠나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인 곳으로 이사함이 무슨뜻인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
이 많은 동네가 나는 좋았고, 집에 오기전에의 약수시장의 혼잡함과 볼거리, 길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보물섬이란 만화책,, 이런 것들이 신기 하기만 했다.
 
-골목을 뛰어 다니며 놀던 그때의 친구들,, 잠시 더 배웠던 바이올린,, 그때 같이 첼로를 배웠던 또래
의 여학생은 지금은 제법 이름난 첼리스트이자 교수가 되어있다. 그녀는 내 이름이나 기억할까? 그때
같이 골목에서 뛰어 놀던 현태는 지금은 세아이의 아버지이자 어느 회사의 부장이 되었다던데.. 약수
산기슭을 타고 오르던 싱아잎의 새콤한 신맛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이들어 찾아가보게 되는 옛터전,,, 추억속의 길은 여전한데 현실은 불 투명하다. 마치 차창에 서린
습기로 뽀해지듯 몽롱하다. 추억이 서려있던 청구국민학교, 누나가 다니던 장춘국민학교, 숭의여
고, 몰래 스며들어가 보던 장춘체육관의 레슬링 경기, 공짜로도 볼수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때
친구들에게 배웠었지,,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들,,,
 
-잠시 되짚어 보는 추억은 아름답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들 이렇게 적어보지 않으면 후에는  기억도
나지 않으리라 세상의 많은 일들,, 황우석도, 수도이전도, 월말, 송년도, 마누라와의 감정싸움도,,,
모두 잠시 잊는다. 세상은 쉬지않고 흐르고 나도 이렇게 변화해 왔다. 아직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고, 주위의 내가족, 친구, 벗들,, 조금더 넓은 마음, 마음을 비워내며 살고 싶다. 세상을 살면
서 쉬운일도 없지만, 어려운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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