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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어릴적 ‘내 꿈’은,,,.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그립다.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님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듯하게 섞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 도종환 시 ‘어릴때 내 꿈은’모두



** 내 어릴적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 이었다. 국민학교시절 선생님은 ‘못 하는게 없는’ 슈퍼맨 이었고, 산수도 음악 시간에도 풍금이나 피아노를 척척 치시며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슈퍼우먼 이었다. 6학년 때의 여자 담임 선생님은 서른이 갓넘은 노처녀 선생님 이였는데,, 시험을 잘보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다가 목을 만져 주셨는데, 설레이는 마음에 삼일이 넘게 목을 씻지 않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재미’로 ‘화풀이’로 사적인 감정으로 때리는 ‘선생’도 많았고 사립학교의 박봉과 어려움 속에도 편견없는 사랑으로도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선생님도,, 부모를 불러서 ‘금전’을 요구하고 학교비품을 학생들에게 요구하던 ‘선생’도 보았다. 결국에는 자신의 ‘업’에 전문적인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는데,, 12년의 학창시절을 통하여 ‘세상사의 단면’을 학교생활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달까!?…,

급기야는, 우리때는 ‘미워하기’는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존경했던 선생님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때에는 ‘존경의 염’이라도 존재 했던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귀한 시대에는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 시대를 따라 쌓여져 왔던 ‘계층과 차별’에 대한 교육이 역으로 ‘선생님’들께 ‘독’으로 되돌아 친 느낌이다. 2024년 에는 공립유치원 신입 교사룰 뽑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줄어들기 시작한 아이들의 숫자가 ‘유치원’부터 수치로 나타났고, 폐교, 통합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숫자가 매년 증가 하고 있다.

모두가, 변해야 한다. 선생님도, 부모도, 학생들도 지도자들도 ‘초심’으로 돌아서야 한다. 정치가, 경제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천사같은 아기들의 미소도, 텅텅빈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노는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우울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사는게 힘들다” 하는 말이 나오는 시대는 불행하다. 이번의 ‘학교사태’를 통하여 모두가 ‘절실하게’ 깨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