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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시론,

다양성, 그리고 인정, 시의 생명.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이기철 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





풀통 / 김광선




풀통이 넘어져 모자란 만큼 물을 채웠다
넘어져 흐른 자리는
굳어 엉기고 점성은 강해져
만지는 손마다 쩍쩍 들러붙는다
풀이라는, 찐득찐득해야 하는 성질
물을 탄 풀은 점성이 떨어지고
느슨해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대낮을 설명해야 하는 날이 길어졌다
아이들도 말수가 줄었고
아내도 외면하는 날이 많아졌다
넘어진 풀통을 성급하게 일으켜
가슴 깊이 희석해버린, 쉽사리
증발하지 않을 것 같은 수분이지만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겠지
무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찍 깨우치지 못했어도
서로를 적셔야만 붙는 거라고
조금은 얼룩져도 함께 마르며
딱지가 앉는 거라고, 흡착력은 비록 떨어졌으나
가슴 맞대고 기다리는 사람살이
그래도 아직은 사탕처럼 달기만 하다

ㅡ<<창작과비평>>(2004. 여름)



쌍ㅅ이 영  쳐지지 않는 무딘 나의 손가락
아직도 이유와 때를 모르는 나의 경련
그리고 경련을 잠재워주는 내 평생의 연인들-딜란틴과 바리움, 테그레톨, 라미탈, 그 동그란 흰 속살들
어느 아픈 시인이 선물한 상앗빛 만년필
무수히 버림받은 나의 수첩들, 다이어리들, 책들
오후 네 시 반에 방문하는 우체국 창, 부치지 않은 초록빛 엽서들, 사인을 요청하는 레이건 닮은 소포계 우람한 청년
어느 날 무사히 지나온 모퉁이들,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들
이 거리 저 거리에서 만난 입이 뾰족이 나온 화살표들
살아남은 슬픔을 깨무는 듯, 2년이나 남은 할부 개월을 깨물고 있는 나의 스마트폰 메모장
숫처녀 같은, 서러운 음악들
은빛 사진틀의 폐쇄회로
은밀한 성소,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아무에게나 열리는 자동문들
아름다운 창녀, 자유, 민주
잔등에 업혀 칭얼대는 미래
잠재적 감기
네가 둘러쓴 빛나는 모자들, 또는 그 후광, 또는 그 추상적 지연
멜로드라마들의 진정성, 브로치들의 영원성
아이섀도 짙은 나의 추억, 희망

그리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만난, 아아아 그


- 강은교 시 ‘ 아아아, 오늘도 나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들’
  *  [바리연가집] ,실천문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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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시 한 채 -안현미 시인
김자흔


요즘 그녀의 시 쓰는 화두는 오르지 젖이란다
화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시 속에 젖을 풀어 놓을 생각이란다
그래 그런지 함평 찾아가는 문학버스 안에서
꽃무릇이 다 졌을 것이라는 동행 시인의 말에
"뭐라고요? 젖이 다 젖어버렸다고요?"
대뜸 젖으로 들이미는 그녀의 우문,


그녀의 시 속에 등장하는 젖은 아직은 비루해서
이제 겨우,
젖동냥 젖비 젖울음 정도


젖감질젖꼭지젖꽃판젖내젖당젖니젖동생젖멍울젖배저부들기젖비린내젖갬젖송이젖어미젖줄젖털젖퉁이


이 많은 젖의 재료를 섞어 어떤 시를 낳을지는
무릇 그녀의 몫,
발효된 시 가득 쟁여 놓았다가
가난한 시인들에게 詩젖 한 사발씩 푹푹 떠주는 일도
꽤 재미진 일이 아닐까


지상에 아직 집 한 채 마련치 못한
그녀, 이제 머잖아
보얀 젖들이 꽉꽉 들어찬
언어의 詩家 한 채 안을 수 있겠네






시,  부질없는 시
정현종


시로써 뭘 하려는 생각은
오래전
들고양이의 밥으로 내던져 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생존은 무엇을 증거하고 있단 말인가


침묵이 간다
항문이 입이고 입이 항문인 절지동물처럼
맨몸으로 전신을 땅바닥에 끌고
그냥
생긴 바 대로


침묵이 간다






지면 없는 시(詩)
정영주


제 정신이 아니니까 칼을 쓰지
숫돌에 무시로 갈아도 문자만 날이 서지
집도 없는 문장 서너 줄 용쓰고 광택내도
거리로 내쫓기지, 문전박대지
시답잖은 시 나부랭이들, 좌판 벌일 일 있냐고
가슴 쪼개 해부한 시, 쓰레기통에서만 빛이 나지
눈물과 땀 서너 방울의 낭만이나
피 한 방울 찍어 쓴 진정성은
저잣거리 농담만도 못하지
통박 굴려 막가파로 가는 문장만 간간
현수막에 걸려 펄럭이지
주제도 의미부여도 이미지뿐인
막무가내 호기심을 무어라 하는지
지면 없는 시가 창문을 뛰어나와
골목을 배회하는 노숙은 어디에 잡아둬야 하는지
모자까지 깊게 뒤집어쓰고 시니컬하게 야옹거리다가
주인 없는 댓글에 넘어지는 시는?


이름도 갖지 못한 시인들이여
이제 갓길 없는 곳으로 다니지 마시게
변방일수록 소통이 부재여서
중심 잡기가 여간 어렵다지 아마,
출장 나간 문고리 잡고 몇 번 흔들다 지치는 것
그것이 지랄 같은 시라네
부싯돌처럼 서로를 비비고 쳐도
불씨조차 일어나지 않는 것이







취조 ㅡ베를린 천사의 시*
김준현


너와 나 사이가 캄캄해서 사진을 말린다

어두워지면 빨랫줄에 널어놓은 창들이 열리고
먼 곳을 보며 희미해지는 눈이라는 곳
쉰 냄새가 나는 바깥이란,
바깥은 다 상상한다

나무의자에 가지런히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러 장으로 나뉜다
식어가는 눈으로

붉어서**
반응하지 않는다
비 내리는 소리를 적으며 귀가 다 젖고
내가 그린 창에는 바람이 많아
떠내려가는 새들
구름이 빈 깡통처럼 요란한 밤마다
가장 많이 본 게 검정이다 아픈
사람들의 숨소리를 외운다

새들은 날아가지 울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잠을 치며 몸을 비운다
뚜렷해지는
상이 맺힌다



*영화 제목
**인화지는 유일하게 붉은빛에 반응하지 않는다.







9시간 동안 읽어야 하는 시
김 승 일


교양 잡지를 읽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 시를 보았다 83쪽에 있었다
제목이 9시간 동안 읽어야 하는 시였다
시가 무척 길었기 때문에
나중에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9시간 동안 읽어야 하는
시를 읽지 않고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시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다
그다음 장에는 9시간 동안 읽어야 하는 시를
읽지 않고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시가 있었다
그는 그가 이러한 말장난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9시간 동안 읽어야 하는 시를
타이핑해 보았다
그 시를 타이핑하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등대의 시
이병일


나는 검은 물기를 등줄기에 지고 안개 젖은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만치 어스름의 저녁이 오고
내항선이 뭍으로 오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가장 먼 곳에서부터 첫 별이 뜨듯 나는 천천히 빛줄기를 세운다
 

나는 등 푸른 저녁이 온다고 우는 흑염소 새끼와
길 붉은 언덕의 풀꽃들이
벼랑을 기어오르는 해풍으로 꽃대를 세우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바다가 종일 파랑파랑하게 빛나는지 묻지 못했다
 

나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풍경을 읽기 시작한다
방어진 해녀가 물질하며 파도와 주고받는 이야기와
어둠이 삼켜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엿보게 되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폐선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둠 저편에서 깜박거림을 켜는 화암추 등대였으니
밤바다를 건너는 물길의 하루마저 뭍의 세계로 건너가게 했다
투명하지만 차갑고 단단한 물결들을 통해
나는 말향고래의 신화를 모래톱 위에 켜켜이 풀어놓기도 했다
 

나 자신이 희고 아름다운 바다의 얼굴이 될 때
사계절 내내 어제의 피로가 쌓여 있는 밤의 물결 사이로
이쁜 해파리들의 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달빛이 내 뒤통수를 쓰다듬을 때
나는 우아하고 부리가 긴 바닷새의 잠에 꿈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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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새 삶이
바다와 등대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불타는 나무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되풀이 한다
  납작한 돌덩어리에 팔 다리를 우겨넣은 빌레못 동굴처럼

  숲의 불분명한 꼭대기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
  낙엽에서 풍기는 썪은 냄새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판에 타오르는 연기 같은
  그 모든 것들을
  내게 돌아온 발목과 손목으로 치부하면서

  나는 다만, 돌이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의심 많은 판석 (板石)위에 눕는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순간을 응시하는 건
  나의 유일한 진정성,

  타오르는 하나의 형상을 건지기 위해
  나는 마침내 침대가 되리라
  익숙하게 바닥을 차지한 나는 서서히 살아나리라

  화석이 된 나를 허공 아래 누이고
  침대가 되는 연습을 한다
  매몰된 동굴 입구에서 발갛게 타올랐던 숯불처럼
  살아있는 연습을 한다

  뻗쳐오르는 여름 한낮, 한 줄기에 핀 문장을 쓴다
  꽃과 가시를 한 몸에 처박은 들장미처럼

  여기까지 온 시간의 바닥에 붉게 핀
  얼굴을 흩뿌리면서



- 강영은 시 ‘ 돌침대의 노래‘
  * 격월간 <현대시학> 2019년 봄호



철물점 불이 꺼지면 거리는 커브를 돈다
어둠을 이끌고 찾아오는 소리는
너무 조용해
귀가 열 개 온 몸이 귀
뜨거운 문장을 마시는 소리 오래 오래 보이네
난 말야
시인이 되고 싶단 말이지
앙상해서 시인답네
말라서 시인답네
시집 속엔 다 들엇네
시인답게 살아보려 하루 한 끼로 사네
세 끼 다 챙겨먹고서는 시가 돨 것 같지 않네
교과서가 되고 싶은 시들
책꽃이에 꽃히고 싶은 시들
자반고등어 프라이팬에
라면 국물이 흐르는 양은 냄비에
시가 뭔지 몰라 시가 시드나?
늙은 시인은 말하네
아직도 시가 뭔지 몰라
이것도 시가 되는지 보라며 커피를 타네
뜨거움에 풀리는 것들 몇을 알고 있어 다행이네
덩어리지고 아픈 것들 몇은 볼 수 있어 다행이네
불 꺼진 창고에 앉아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시집 속에 사는
당신을 오래오래 바라보네
보이지 않는 것을 쌓고 또 쌓네

- 홍정순 시 ‘ 시인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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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시인 유용주의 다음 '고백'을 들어보자

.....참 부드럽고 아늑하고 겉보기에 풍성한 곳을 많이도 찾아 다녔다네. 사근사근 혓바닥에 구르는 당의정처럼 독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연애시의 마을, 자기가 쓰고도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른 해독 불가능한 난해시의 패거리, 요설과 장광설 하나로 포스트모던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외국 입양을 못해 안달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임, 엄살과 광기로 얼룩진 반장들 동네, 공식을 만들어 놓고 언어를 조립하는 조립식 건축업자들의 단체,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도사풍의 시, 끊임없이 남의 시를 조금씩 베끼는 쥐새끼들의 시, 주제만 너무 주장하다가 그 주장에 치어 저도 감당하지 못할 말을 주저리주저리 동어반복하는 사람들까지 수없는 마을과 동네를 기웃거렸다네.
한때는 그 사람들과 들고나면서 만고풍상을 겪었지만 결국 문학이란 사람살이에서 오는 눈물겨움 아니던가. 잘 드러나지 않은 그늘의, 배면에 깔려 있는, 생명 있는 것들의 안쓰러움 아니던가. 모시고 섬기는 일에 너무 인색해. 모두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지금 말한 내 말도 내가 그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함일세.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



<추기> 오늘의 우리 시를 읽는 대중들은 김소월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박한 수준임에 비추어 정지용 이상의 수준은 잘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시들을 한두 편 예로 들면 대체로 이런 부류의 시들이다.

①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 뛰어든 / 나는 / 소금인형처럼 / 흔적도 없이 / 녹아 버렸네

② 그대를 만나던 날 /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 따뜻한 배려가 있어 /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 오래 사귄 친구처럼 /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①은 류시화의 <소금인형>, ②는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시다. 그래도 류시화의 경우는 깊이 있는 명상을 동반하는 시이므로 나은 편이지만 용혜원의 경우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겨냥한 얄팍한 감상주의의 옷을 입고 있으며 그것을 한 꺼풀 벗기면 에로틱한 연애편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글에선가 이승하 시인이 지적했듯이 류시화의 시는 이 땅의 현실이 완전히 제거된 신비주의적 명상 내지는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고, 목사 시인인 용혜원의 시는 소녀적인 감상을 포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둘 다 상업적인 전략의 차원에서 쓰여진 시라 할 것이다

- 강인한 '시와 시인, 독자와 시의 거리'―<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에서





<추기> 시는 언어예술이기에 시인은 말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시는 새로워야 한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참신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와는 다른 목소리와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것들이 또 다른 시와의 변별성이며 개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의 모험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이 시의 독창성이며, 시의 진실이며, 시의 감동이며, 시의 진정한 모습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다.
- 제13회 <시와 사람> 신인상 심사평 중에서





<추기>...딸의 신발이 작다고 신발을 벗기고 발가락을 자르는 아버지, 내 몸을 둘둘 말아 접시에 올려놓았더니 나를 집어 먹으려는 어머니, 몸이 기우뚱거리지 못하도록 아버지에게 자신을 쾅쾅 박아달라는 딸..., 그러나 여성시에 관한 한 이런 진술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말선의 시에는 박서원의 자기 신체 훼손, 노혜경의 카니발리즘, 김언희의 도발적 상상력 등 선배 여성시인들의 언어가 큰 변주 없이 한 집에 모여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의 낡음이 사유의 낡음과 무관하지 않다면, 언어의 답습은 적지 않은 결함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국시에 관한 한, 서정적 경향의 시라고 분류되는 것에는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대체로 자연친화적이고, 복고적이며, 전근대적 삶에 향수를 느끼고 있고, 세계의 불화나 갈등보다 화해나 조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안이한 감상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문단에서 여전히 주류를 점하고 있는 이러한 시들의 생산은, 정치적 현실로부터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던 제도권 문학의 탓도 있지만, 최근 생태주의적 인식의 대두에 고무되어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경향이 있다... 안이한 서정시일수록 세계의 복잡다단함과 폭력성을 직시하기보다는 대상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사고에 기울어지는 추세가 있다. 그를 위해 순진무구한 자아를 설정하거나, 세계와의 합일이 가능한 시대나 지역이라고 생각되는 전근대 또는 문명화되지 않은 영역이 등장하는 경향이 한국 서정시에 빈번하다.
- 정문순 ([다층] 2002년 겨울호 '2002년 시를 점검한다' 중에서)





<추기> 요즘 읽는 시들 중 많은 것은, 비록 말장난의 시라도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이라는 개념도, 대화라는 개념도 없다. 중언부언, 도대체 요령부득인, 그래서 안이하고 탄력없는 시가 새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 신경림, 시집 [뿔]에 실은 '시인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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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꺽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꺽어













詩, 최 승자
*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DEC




최승자는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수도여고와 고래대 독문과에서 수학했다.
{문학과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솔직히, 최승자의 시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최승자의 시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승자의 이름으로 발표된 시들은 읽을 가치가 있다.
최승자는 믿을만한 몇 안되는 우리 시인이다.



최승자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에도 김소월처럼 혹은 한용운처럼 시를 쓴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물론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가능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인가이다.
시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그 시대의 정신적 꼴의 어느 한 모서리와 분명하게 대응될 수 있는
진정성의 기교가 더욱 더 필요할 것이다.
진정성의 내용에 알맞는 진정성의 기교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 내용은 오히려 능청스럽고 철면피한 것이 되기 위운 것 같다.
그러나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무슨 말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슨 할 말도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시는 여하튼 존재한다는 배짱 혹은 체념 혹은
위안에서가 아니라, 그러나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
시에 대하여 말하기보다는 시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편이
훨씬 즐겁거니와, 적어도 당분간은 시 곁에 아늑한 쉼표를 달아주거나
아니면 시에게 아주 동그란 침묵의 금반지를 끼워주고 싶다."
(시집 뒷표지에서)


이 시집을 장식하고 있는 찬사를 덧붙인다. 이건 사족일 수도 있다.


"첫 시집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즐거운 日記}는 더 나아갈 데가
없을 만큼 강렬해진 비극성으로 아름답게 번뜩이는 시집이다.
철저한 긍정에 도달하기 위해 세계 전체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수행하는 최승자의 방법적 절망은,
인간과 희망과 사랑에 대해 <전체 아니면 無>라는
비극적 전망을 궁극에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이로운 시 세계를 이뤄낸다.

[시인학교 게시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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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안진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천년의시작,2008)/ 정숙자
  
   거짓말을 통해 그려낸 진실의 화폭
  

    시는 생각을, 수필은 생활을, 소설은 삶을 매개한다. 그리고 생각은 생활을, 생활은 스타일을, 스타일의 집적은 저마다의 인성․인격․인생으로 굳어진다. 그러므로 딱히 문사가 아니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몸소 글을 쓰는 필진이며 독자이다. 어떤 장르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호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는 생각의 전형을 전파하므로 문학의 정수라고 일컬을 것이다. ‘문학의’라고 한정지을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생각은 언행의 지시기관이기 때문에 브레인, 혹은 운명까지를 좌우하는 ‘생애의’ 본부가 아닌가.
   유안진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의 새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라는 표제는 우선 두세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시 창작에 있어서의 방법론으로, 또 하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상 그대로의 풍자로, 또 다른 하나는 전자의 두 항을 합친 개념으로도 짚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2음보로 이루어진 ‘거짓말:참말’이라는 대칭구도가 간결미를 엿보게 한다. 표제는 대개 그 한 권의 콘텐츠와 흐름을 내포하며 기의/기표의 거점이 무엇일까를 더듬어보게도 하니 말이다.


  
  풀잎 하나에도 가을이 내려와 주고
   비누방울에도 무지개가 걸려주는 이 땅에 태어나
   병 되는 줄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들 가는 중에 나도 끼여 있다
   인생을 사느라 인생을 팔았고
   시간을 아끼느라 시간을 낭비했던
   열정은 수난의 맨발이었고
   그리움은 눈먼 황홀이었다
   여기를 보고 있어도 저기를 보는
   뜬눈보다 멀리 보는 눈먼 큰 눈을
   딱부리 사팔뜨기 사발눈이라고들 하지만
   눈 속에 출렁이는 바다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밤마다 외눈등대에는 불이 켜지고
   태풍이 불고 파도가 끓어 넘쳐 뒤집히기도 한다
   나의 왕국은 여기 아닌 끓는 바다건너 저기니까
   나의 시대는 훗날 언제이니까
   눈동자 너머의 저기로 가는 희망봉
   새 우주 새 행성의 신대륙으로 가는 길
   물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뜨거운 내 눈물, 그 외길 밖에는.
                  
         -「눈 속의 바다 건너」전문
  


   이 시는 순간이나 사물의 일면을 포착한 게 아닌, 현재․과거․미래까지를 아우른 화자의 전 생애가 담긴 대형화폭이다. 20행의 길지 않은 문장 속에 대자연의 섭리와 인간적 고뇌, 차안을 넘어선  “새 우주 새 행성의 신대륙으로 가는 길”까지를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으로 그려냈다. 담박하지만 힘이 있고 은은하지만 깊이가 있으며 겸허하지만 색깔이 선명하다. 그리고 구슬프다. 한 생의 정한을 어떻게 이리도 단아하게 새길 수 있었을까. 불가에서는 우리의 삶을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했으니 이 시는 개인적 회고이기보다 우리 모두의 보편적 궤적일 것이다. “인생을 사느라 인생을 팔았고/시간을 아끼느라 시간을 낭비했던” 이라는 문구를 접하며 어떤 묵객인들 마음 한구석 쩌렁한 공감을 뿌리칠 수 있으리오.

   이 시의 제목이「눈 속의 바다」이지만, 기실 밑지층(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 개의 고원』142쪽/새물결)은 “눈동자 너머의 저기”를 향한 희망이다. ‘눈 속의 바다’란 얼마나 요원한 삼라만상인가. 여기서 의미하는 바다야말로 사파(裟婆)의 다른 표현일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뜻한다. 그 가없는 희로애락의 바다를 “뜨거운 내 눈물”로 압축시켰으며,  “신대륙으로 가는 길” 또한 그 눈물을 통해서일 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한 여정을 이토록 승화시킬 수 있었던 저력은 40여 년의 축적된 문랍(文臘)이 아닐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는 항상 다수 속에서 제 나름의 목소리를 확보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개성의 확보라고 말한다(김용직『韓國現代詩史 1』161쪽/한국문연).”

   개성은 유일무이한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자이며 예술가가 남길 수 있는 이미지의 근간이다. 새로움이라는 기치 아래 나날이 팽창하는 기교와 이즘(ism)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를 체득/견지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미증유의 지층을 창출하고 가꾸어나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작가적 피안에 닿았다고 봄직하다.  “눈 속에 출렁이는 바다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표현된 바다 역시 모래톱에 넘실대는 물리적 차원의 바다가 아니라 관념의 바다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으리라. ‘사발눈’이라는 북한어까지를 수용한 「눈 속의 바다 건너」는 언어경제와 진정성, 은유의 다른 어휘인 ‘거짓말’의 문제에서도 모자람이나 넘침이 감지되지 않는다.

   이 시는 긴장과 탄력이 고루 배치되어 읽은 이에게 쾌감과 안도감을 안겨준다. 한행 한행 주해를 붙이고자한다면 이 한 편만으로도 원고 40매를 다 써야 되지 않을까. 하여 나머지는 독자 개개인이 직접 허블망원경을 통해 감상할 수 있게끔 우주 공간 어디쯤에 묻어 놓으려 한다. 창작물 안에서의 개성이란 ‘별나다’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내용은 물론이려니와 기법 면에서도 유행이나 구태를 뛰어넘는 번뜩임이 수반되어야 하리라. “나의 시대는 훗날”이라고 언명한 저자의 비전은 우리 모두에게도 목적지이고 희망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주관과 객관을 기능적으로 직조해낸 비단의 일종이다. 서정성의 유연한 안착에서도 틈새를 허용치 않아 잘 조여진 비거리를 제시했다.

   「눈 속의 바다 건너」를 넘기며 잠시 만년필을 눕힌다. 찰나를 딛고 가는 땅 위의 삶에서 슬픔은 풀보다 무성하고 구름보다 풍성하며 바람보다 은밀하다. 슬픔은 연월일시 남녀노소를 개의치 않으며 ‘동물이냐? 식물이냐? 광물이냐?’ 따지지도 않는다. 시공간의 모든 사물은 슬픔의 인질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인생의 끝이-결구가 아름다운 시(詩)이기를 염원한다. 슬픔이 외출한 사이 기쁨을 맛보며 그 여운으로 굽이~굽이~ 로애락(怒哀樂)을 마시고  다음 차례의 기쁨을 산다. “숲에는 고요한 나무 없고, 내에는 멈춘 흐름 없네(곽경순의 시『세설신어上』347쪽/살림).” 이렇듯 세상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염열지옥이었으니 이슬언덕 나비에게 들려줄 시 한 편을 어찌 마음에 심지 않을 수 있으랴.
    


   시끄러워 잠이 깼다
   창유리에 달라붙은 반투명의 아우성
   떼 지어 엉키며 부풀리며 퍼져나가며
   쉴 새 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메아리조차 자욱하다
   고요가 이렇게도 소리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청이 이렇게도 깊고도 요란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소리가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니
   귀를 틀어막고 우왕좌왕하다보니
   먼데 산봉우리 하나가 모가지만 내 놓은 채 허우적거린다
   세상은 거대한 안개바다
   깊이 모를 대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아우성만
   끼리끼리 휘돌며 메아리치고 되받아친다
   한나절을 기다려 나가보니
   산자락 산자락마다 선혈이 낭자했다
   단풍은 절정,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였다.
                               -「고요의 아우성」전문



   고요는 아우성과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하면서 바로 뒷면에 짝지워져 있다. 현실에서 그 심적 거리를 왕래한다는 것은 수월찮은 일이지만 시의 세계에서는 한순간에 오고간다. 아니, 한순간이 아니라 동시에 아우른다. “고요의 목소리가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니”-거짓말이 참말로 환치되는 광경이 절묘하다. 고요라는 무형태가 어찌 목소리와 식도를 가졌을까만 시인은 너끈히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고 거짓말했다. “먼데 산봉우리 하나가 모가지만 내 놓은 채 허우적거린다”니 참으로 웅장한 상상력이 아닌가.

  시인은 새벽에 깨어 “반투명”으로 밝아오는 창을 대면했었나보다. 다시 잠들지 못한 채  근심에 싸였었나보다. 그 근심이 가져다주는 소란이 세상을 “거대한 안개바다”로 칠해 버렸나보다. 그런 가운데 한나절을 넘기고 문득 눈을 돌렸을 때 붉게 물든 단풍마저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로 읽혔나보다. 그리고 제1․2연 사이의 행간에는 오랜 세월이 내장되었다. 이 시에 담긴 한나절은 정작 하루의 절반이 아닐 뿐더러, “선혈이 낭자”한 가을도 일년에 한번 도래하는 계절이 아니라 인생의 가을이며 지은이의 사상과 관조가 깃들어 있다.  “시의 폼을 결정하는 것도 사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성혁『불꽃과 트임』136쪽/푸른사상사).”는 전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디오니소스적이기보다는 아폴론적인 침착함, 너울거리는 파도이기보다는 뿌리 깊은 섬, 꽃이기보다는 나무와 같은 푸근함이 『거짓말로 참말하기』의 진면목이리라. 거짓말이라는 부정적 언어를 참말 이상의 가치에 배열시킨 점만으로도 화자의 곧고 온유한 사상이 잘 느껴진다. 사기(詐欺)를 위한 술수가 아닌, 바름을 위한 거짓말! 그 거짓말은 진실을 지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의 의중에서만이 뿜어져 나오는 위트이며 지조인 것이다. “몸에도 몸의 마음이 있다(다니엘 데넷『마음의 진화』128쪽/(주)사이언스북스).”고 하니 시가 곧 시인의 심신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은
   어디서 마주칠까
   외나무다리 건너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혀서일까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 사이에
   나는 살고 있다
   마주칠까 겁나 오도가도 않고
   다만, 그저 그냥 살고 있다
   거짓말도 유전 된다
   문 닫고 들어오고 문 닫고 나가라고 이르시던
   어머니는 혹한 평생을 문 닫다가 가셨다
   나는 한술 더 뜬다
   문 잠그고 나가고 문 잠그고 들어오라고 꽥꽥거리며
   늘 문 잠그고 드나든다
   잠그어도 새나가는 울음 때문에
   울지 않으면 울려야 직성 풀리는 종치기가 있다기로
   죽은 소도 울려서 살려내는 고수(鼓手)가 있다기로
   천 년 전 빙하(氷河)를 살리려고 내가 먼저 운다
   나는 늘 거짓부렁 운다, 눈코 잠그고 운다
   우는 나를 따라서 빙하도 운다
   천 년 전이 녹느라고 천 년 후가 얼어붙는다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 사이에서.


                              -「거짓말」전문



   화자는 마치 개인적 슬픔이 아니라 인류의 가슴을 대신 울어주고 있는 것 같다. “거짓말도 유전 된다”고 했지만 실상은 ‘눈물’이 유전 되었다는 얘기다. “어머니는 한평생 문 닫다가 가셨”고 화자도 “늘 문 잠그고 드나드”는데, 그 까닭인즉 자꾸만 “새나가는 울음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 나타난 문은 아무리 단속해도 빗장이 풀리고야 마는 가슴속 눈물이다. “울지 않으면 울려야 직성 풀리는 종치기가 있다기로/ 죽은 소도 울려서 살려내는 고수(鼓手)가 있다기로/ 천 년 전 빙하(氷河)를 살리려고 내가 먼저 운다”고 했다. 그 지극한 진실을 “나는 늘 거짓부렁 운다, 눈코 잠그고 운다”고 진짜 거짓말을 하고야 만다. 다시 읽자면 “눈코 잠그고” 울기 때문에 남모르는 가슴 한구석에선 늘 눈물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정회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결코 동심을 잃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가장 먼저 말라버리는 게 눈물이건만 그토록 따뜻한 거짓말로=참말로 주위를 감싸고 안심시킨다. 그러한 성품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계의 위의일 것이며, 타고난 기품일 거라고도 생각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잃어버린 냉혹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신범순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나비』209쪽/현암사).”지 않는가. 울고 싶어질 때야말로 본래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게 아닐까.





   편두통이 생기더니
   한 눈만 쌍꺼풀지고 시력도 달라져 짝눈이 되었다
   이명도 가려움도 한 귀에만 생기고
   음식도 한쪽 어금니로만 씹어서 입꼬리도 처졌다
   오른쪽 팔다리가 더 길어서 왼쪽 신이 더 빨리 닳는다
   모로 누워야 잠이 잘 오고 그쪽 어깨와 팔이 자주 저리다
   옆가리마만 타서 그런지 목고개와 몸이 기울어졌다고 한다
   기울어진다는 것
   그리워진다는 것
   안타까워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아프고 아픈 것
   아픈 쪽만 내 몸이구나
   아플 때만 내 마음이구나
   남이 아픈 줄을 내가 어찌 알아
   몸도 마음도 반쪽만 내 것이구나
   그림자도 반쪽이구나
   그런데 나머지 반쪽은 누구지?


                        -「그림자도 반쪽이다」전문




   이 시는 끝 행 “나머지 반쪽은 누구지?”에 찍힌 물음표부터 해결해야 될 듯싶다. “아픈 쪽만 내 몸”, “아플 때만 내 마음”-그렇다면 아프지 않은 쪽이 해답이겠다.  “기울어진다는 것/ 그리워진다는 것/ 안타까워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아프고 아픈 것”으로 인해 잊어버린 그것은 다름 아닌 기쁨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을 인내하는 동안 “편두통이 생기더니 (……) 목고개와 몸이 기울어졌다고 한다”-그렇지만 그 상심 끝에 금린옥척(錦鱗玉尺)을 건졌으니  “아픈 쪽만 내 몸이구나/ 아플 때만 내 마음이구나”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예술작품은 절대적인 존재에 귀착된다. 존재하는 것, 즉 ‘이것은……이다’라는 말 자체를 현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의 임무이다(모리스 블랑쇼『문학의 공간』48쪽/책세상).”라고 논했음에랴.        


   『거짓말로 참말하기』를 읽는 내내 유안진 선생님(여기서 존칭 부활)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눈 속의 바다 건너」「고요의 아우성」「거짓말」「그림자도 반쪽이다」뿐 아니라 「검정에 빠지다」와 「천고마을」 「파란 피」등. 다수의 시편들이 풍자이기보다는 서정시의 본령인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관념이었기에…. 문단의 대선배이며, 후배 시인들에게 따뜻한 그늘을 드리워주시는 선생님! 돌이켜보건대 선생님은 내 젊은 날의 동경이며 자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숫눈길에 발자국을 남겨주시는 어른이다.


   『거짓말로 참말하기』에 대한 서평 청탁이 왔을 때 감히 고사하지 못하고 받아들여 누가 되지나 않을는지 걱정된다. 선생님의 업적과 인품은 익히 알려진 터라 굳이 기록하지 않았다. 여느 서평과 달리 한 편의 시(「눈 속의 바다 건너」)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텍스트의 완결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여러 작품을 잠깐잠깐 접하느니보다 한 작품에 집중함으로써 전달력을 공고히 하려는 심산이었음을 밝힌다. 선생님의 다음 시집에서는 ‘나머지 반쪽’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더 큰 기대와 기다림을 품는다. 깊은 감사와 함께 만년필 뚜껑을 더듬어 찾는 아침…, 마루에 깔린 창틀의 그림자가 유난히 정갈하다. ▩  


약력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외. 산문집 『밝은음자리표』
2008년 <들소리문학상>수상



2009년 애지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