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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민우에게 3


民雨에게 보낸 편지 - 셋.
조회(316)
이미지..,love. | 2007/05/01 (화)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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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고만 싶다
 
곧게 뻗은 키큰 전나무가  되리란
죽은 후의 소망은
접어 둔 채
그저 누워 쉬고만 싶다
꿈이 깍여
고원이 된
지난 날의 내 추억속의 산은
평온한 날개 깃 아래
한가로운데
나는 쉬고만 싶나?
기어오르고 기어오르고
"해야 해"란 마음속의 외침엔 아랑곳 없이
제삿돌 넓직히
누운
휴식과 조용한 평화에의 의지.
 
 
  -1985. 4,5. '눕고만 싶다'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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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우!
걸을 때 마다 군화에 진흙이 귀찮게 묻어나도 싫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그것은 언땅이 녹는다는 것이고 곧 겨울이 끝난다는 것이니까... 민우, 인간이 강한 정신력과 자신감을 갖게될때 얼마나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 나는 여러번 경험 하였네, 영하 20도를 밑도는 엄동설한에서 잔기침 한번 하지 않다가 요즘같이 따뜻한 날씨에 코를 훌쩍이는 것을 보면 악조건하에 강인한 정신을 잃지 않는것이 나약한 의지로 좋은 환경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네,
 
 지난 1월에는 완전군장을 한채 600고지 이상이 되는 산을 십여개나 정복하는 극한상황극복훈련이 있었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들 걱정이 많았지,,, 그도 그럴것이 그때 기온이 영하 35도 이하까지 내려가던 그야말로 혹한 이였으니까. 우리는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했지, 장갑과 비닐 발싸게, 여자 스타킹, 양말 5컬레 등등,,, 그러나 이걸로도 만족할 만한 보온책이 될수는 없었지, 하긴 눈쌓인 영하의 험산을 오르 내리는데 무슨 묘책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50분을 걷고 10분을 쉬는 식으로 하룻밤을 새울때 까지도 모두 잘참아 냈었지, 그러나 폭설과 함께 800고지가 넘는 산길을 오를 때 서서히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 했지, 걷고 있으면 쉬고 싶고, 군장을 베개삼아 누워 있으면 끔찍스런 오한이 밀려와 차라리 걷는것이 낫다는 푸념이 저절로 새어 나오고,,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하다 보니 몸은 점점 물먹은 솜처럼 처지고 발은 꽁꽁 얼어 붙어 감각이 없는데,, 품안에 묻어 둔 양말을 갈아 신을 기운도 낼 수가 없었지,, 동상이 염려 되는데도 말이야,,,
 
 한사람씩 겨우 비탈을 오를때,, 내리막 길에서 눈에 미끄러져 위험하게 미끄라져 갈때,, 야간 행군시에 찰흙같은 어둠속에 백열등이 켜진 민가를 조용히 지날때, 그 불빛의 따스함,, 컹컹 짓는 개들의 소리도 정겹게 들렸으니,,, 오도가도 못하는 비탈길에서 발만 동동 구를때 머리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들더군,, 훈훈한 내무반, 따끈한 김이 오르는 보리차, 김이 뽀얀 목욕탕,,,, 그러나 그렇게 그 산도 넘었지. 산을 넘은 뒤, 식기에 받자마자 얼어버리는 점심을 눈깜짝할 새에 먹어 버리고 군화를 말리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 있으려니 몸이 그대로 녹아 내리는 듯 하였지, 젖은 군화와 양말을 갈아 신으라는 분대장의 목소리만 아득하게 들릴뿐, 손가락하나 움직이기 싫더군, 그냥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정말 참기 힘들었지.
 
 행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거의 제정신이 아니였지,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그 매서운 추위도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고 등에 짊어진 군장은 내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지, 벌써 여러명이 낙오하여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었고, 의무실 침대의 안락함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더군, 그러나 무엇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쓰러뜨리지 않고 걷게 했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하네, 졸면서, 눈을 감고 걷다가 절벽쪽으로 걷고, 뒤에서 툭치면 정신차려 바로 걷다 다시 졸며 걷고,, 다만 내앞에 전우가 걷고 있고 내뒤의 전우가 따라 걷고 있으니 나도 묵묵히 걸은 것이지. 여기에서 쓰러질 바에야 진작에 쓰러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곰 씹으며,,,, 그것은 정말 극한 상황이였네, 앞으로 군생활하는 동안에 얼마나 더 그런 경험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내 생을 통해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였지, 체력의 한계를 지나 정신력의 한계상황에 오락가락 하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하다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과 흥분... 사단가가 울려 퍼지고 군인 가족들과 잔류병들이 모두 나와서 나눠주던 따스한 커피한잔의 맛.... 지금도 그때의 뭉클함이 목줄을 타고 오네,
 
 민우! 정말 군대에서는 우리와 같은 20대의 보통 젊은이들이 어렵고 힘든일을 잘들 이겨내고 있다네, 더이상 발을 떼어놓기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이들중에 절반이 쓰러지면 나도 포기하려 하였지, 그러나 절반이 낙오하는 경우란 어느곳에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나도 지금껏 버텨왔고 앞으로도 끝까지 낙오하지 않을 자신이 생긴 것이지. 날로 추워진 날씨 건강하시게.
 
 
  -1985, 2, 22. 일병 친구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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