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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나무아래 서서 하늘을 보면...







1974년 6월 5일 不見.

1974년 6월 8일 不見.

1974년 6월 9일 不見.

1974년 6월 11일 不見.

1974년 6월 15일 不見.

1974년 6월 18일 不見.

1974년 6월 22일 不見.



포경선의 어둠을 이렇게 기록한 이가 있다


한줄의 기록에 막막하게 펼쳐진

수평선과 안개


1974년 6월 24일 밍크 3구 드디어 發見.


한줄의 기록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비린내와 핏물


不見과 發見 사이에 닻을 내린

어선의 불빛으로 밤바다는 더 깊어지고

항구로 오래 돌아가지 못한 이의

낡은 남방이 벽에 걸려있다


빛바랜 항해일지에는

見자의 마지막 획이 길게 들려있다.




  - 나희덕 시 '不見 과 發見 사이' 모두









운동을 겸하여 두어정거장을 걸어서 서점을 찾는다. 서점이 '돈이 안되는' 장사라서인지,, 시내에서 서점을 찾기는 힘들어 졌다. 모두가 대형화 되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 둘씩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서점보다는 후일에 커피전문점이 꿈인 나는 아직도 희망을 접지 않는다. 제법 규모가 있는 서점을 한바퀴 돌아 겨우 시집을 한권 골라낸다. 햇살은 무덥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바람은 불지 않는다. 입맛이 없어 비빔국수를 하나 시킨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솜씨를 부려 고명까지 얹어 맛있게 보이는 비빕국수를 다 비우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 바람도 없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가만히 가지를 흔들고 있다.


"경건하다는 것이 건강과 명랑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믿는 마음이란 단순하고 소박하며 건강하고 조화로운 인간이나 아이들,
 원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소박하지도못한 우리 같은
 인간들은 숱한 우회로를 통해서 만이 신심을 찾아낸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바로 신심의 출발이며 우리들이 믿어야 할 신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을 긍정하지 못한다."  

         - 헤르만 헷세.



나희덕의 시를 읽다가 "고래를 본자(見者)는 죽고, 고래를 보지 못한자(不見者)는 산다" 는 이치에 닿지 않는 생각에,, 실소 하다가  '허먼 멜빌' 이던가 '모비딕' 에서의 드넓은 바다에서의 자신의 '운명'같은 흰고래 와의 싸움이 생각 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의 어부 노인이 84일 만에 낚은 자신의 운명과의 혈투가 떠올라,,, 인생은 우리의 삶은 이치에 따라 논리에 따라 살아지는게 아니라는 당면한 생각에,, 가만히 길가의 벤치에 앉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본다. 인생의 구경꾼으로 살다가 '운명'이란 괴물과 '딱' 마주 섰을 때... 나는 과연  내 삶의 주인공으로 "운명이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길을 다시 걷다가 땀에 젖어 문득,,,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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