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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거칠고,, 부드러운 손.








아내는 76 이고
나는 80 입니다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나도 올것 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아가다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 시 '아내와 나 사이' 모두





요즈음,, 가끔 가다가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때가 있습니다. 20여년을 살아 오면서 아내의 닉네임도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자기야, 지윤엄마, 크산티페, 마눌님.... 처음 만났을 때의 수줍은 모습은 다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제법 억세고 무서운 여자만 남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 내탓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따져 보다가 내탓인 듯 싶어,, 헤아려 보기를 멈추었습니다. 때로는 이유같지도 않은 사소함으로 심하게 다투다가도 아이들이 지 에미와 내 눈치를 살살보며 기가 팍 죽은듯 풀이 없는 모습에 번번히 내가 먼저 손을 내어 밉니다. 이제는 " 50 이 가까운 나이에 마누라 눈치 안보고 사는 남자가 어딨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치니,, 이제는 마눌님의 잔소리와 눈치가 자장가 같이 편하고 따스하게 느끼도록 내공을 부지런히 닦아야 할 나이에 도달했나 봅니다.

딸들이 커가니,, 처음 기대와 달리 내 모습을 닮기 보다는 엄마의 모습을 닮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도 치우지 않고 늘어 놓고 늘청대는 모습은 참기가 힘이 듭니다. 한때는 마눌님의 건망증을 혀를 찼지만,, 며칠전에는 점심식사를 하고 안경을 분실하여 사무실을 두어시간 뒤지다가 오다가 들린 가게를 역으로 채소가게, 식당, 서점,,, 결국에는 서점에서 안경을 찾았지만,, 채소가게에서 어린애를 안은 새댁이 깊이 공감하는,, 다소 애처로운 눈동자로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장담 할 수 없는 나이요, 체력 입니다. 최근에는 참조할 책이 있어서 일주일의 기간 동안에 무라카미의 책 32권을 시간을 집중하여 읽었습니다. 다초점 렌즈를 댕겼다 밀었다 반복하여 속독으로 모든 책을 무리하게 읽었더니,, 눈이, 그야말로 빠질듯이 피곤 하였습니다. 거기에 월드컵 경기까지 끼어 있었으니,,,

우습지만,, 마눌님이 무서워 졌습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함께 해 오면서 결국엔 그녀의 말처럼 내 자신이 그리 변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눌님이 무섭다고 인정하자,, 결국에는 모든게 더 편안 해 졌습니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마눌님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인간(人間)이란,, '사이'를 두는 관계를 말합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너무 '친밀' 내지는 '허물'없는 관계는 옳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서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편하게 바라 봅니다. 살아가면서 '과정' 이라는게 존재 합니다.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자라듯이 부부라는 모습이 변하고 성숙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서로가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네네~" 하고 "예스(Yes)~" 하며 떠 받들어 줍니다. 불현듯,, 마눌님과 아이들은 '영원한 상전'이란 불길함이 엄습합니다. "제길~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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