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사는 이야기

七夕(칠석).

만나다.





이슥한 밤
저 멀리 상수리 숲 언저리에
작은 등불이 가물거리는 것이
마치 아다치가하라*의 오두막처럼 매혹적이다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이름이 살아 숨 쉬는 수풀 무성한 길
이곳에 오면 아직도 수많은 별들을 만날 수 있다

은하수에는 잔물결이 일고
강기슭엔 견우성과 직녀성이
오늘 밤에도 어쩐 일인지 깊이 숨죽이고 있다

“당신들! 내 뒤를 따라온 거야?”
갑자기 풀숲에서 붉은 구릿빛 알몸뚱이가 튀어나와 위협한다
훅 하고 풍기는 소주 냄새
나는 흠칫 방어 태세를 취한다
방어 태세를 취하는 건 얼마나 나쁜 버릇인가

“오늘 밤은 칠석이잖소
별을 보러 왔지요.”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도 태평하게 어둠 속을 흐른다
“치일석?
칠석…… 아아 그랬군
난 또, 내 뒤를 쫓아왔나 싶어서……
이거…… 실례했습니다.”

칠석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온순히 등을 보이며
되돌아가는 잠방이 차림의 아저씨

그는 마법의 「키요의 집」* 사람이었다
몇 세대가 살고 있는지
다 쓰러져 가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귀여운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아이도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개조차 낯선 이의 접근을 막으며 맹렬히 짖어 대고
무더운 한여름 밤 축시(丑時)가 되면
으레 펼쳐지는 조선말의 화려한 싸움,
벼랑 끝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그 집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기원전부터 생겨나 서서히 모양을 갖춰 온
한민족(漢民族)의 아름다운 옛이야기
일찍이 만요(万葉) 사람들이 사랑했던 소재도
기원을 따지면 저 멀리 고구려, 백제를 거쳐
전해져 온 것이 아니었던가
문자며 직물이며 철이며 가죽이며 도자기며
말 사육이며 그림이며 종이며 양조 기술이며
바느질하는 사람이며 대장장이며 학자며 노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전해져 왔던가

옛 은사(恩師)의 후예들은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경원시되고
한여름 밤 저녁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조차 미행인가 하고 두려워한다

내 마음은 까닭 모를 슬픔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은하를 올려다볼 때마다
이제부턴 틀림없이 나를 휘감으며 놓아주지 않겠지
온몸에서 풍기던 강한 소주 냄새가
훅 하고


- *이바라기 노리코, 「칠석」
    <여자의 말> 달아실, 2019 전문



*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のり子| Noriko Ibaragi): 일본의 시인. 대표작으로 '내가 가장 예뻤을 때(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가 있다. 일본에 윤동주의 존재를 알린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에 관해 쓴 에세이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것. 당시의 현대 문학 교과서. 우리에게 유명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 七夕; 전설 속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음력 7월 7일(일본은 양력 7월 7일)에 각 나라의 전통적인 행사를 지낸다. 칠석날 저녁에 은하수의 양쪽 둑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1번 만난다고 하는 전설에 따라 별을 제사지내는 행사이다. 옛날에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사랑을 속삭이다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을 사서 1년에 1번씩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 견우와 직녀가 건너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고 한다.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줄어들고 장마도 대개 거친 시기이나, 이때 내리는 비를 칠석물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호박이 잘 열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 때이므로 민간에서는 호박부침을 만들어 칠성님께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