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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푸르른 그리움,,,


푸르른 그리움 - 그때에...
조회(286)
이미지..,love. | 2006/05/31 (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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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녘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 하기도 하지, 가벼운 그림들 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래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레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 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가장 짧은 침묵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없이 고개를 갸우뚱 해 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거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 버릴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 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 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고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형도시 '어느 푸른 저녘'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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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1960.02.16~1989.03.07.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안개'당선.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저서;짧은 여행의 기록, 입속의 검은 잎,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89년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채 발견 됨.
 
-오늘 문득 기형도가 생각 났다. 나랑은 동문이고, 같은 또래에 같은 언론계통에 진출하여 서로 나름대로 안면이 있던,,, 그는 정외과 였고, 나는 행정학과라 문득 문득 마주쳐 웃고는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래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뒤적이며 해묵은 시를 올리는 나에게 친구가 내글은 언제 올리냐고 묻는다. 젊은시절 낙서하듯 써놓고, 번역해 놓았던 시들과 생각들,,, 중고등학교때 나름대로 글을 쓰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대학에 가서 참 많이 깨어졌다. 나보다 우수하고, 감수성 많은 기형도 같은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된것. 이때에 문학에 대한 꿈은 접었다. 오늘 문득, 오월의 마지막 날에 그의 시가 떠올라 노트를 뒤적이며 적어 본다. 내가 아는 천재(天材) 기형도, 문득 천재의 명(命)은 짧은 것인가 하는 한탄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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