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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거리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을 원망하며..

    

- 어느 시인이 보내 온 추모시....


 

 

 

나는 당신이, 불알을 까는 궁형을 받았던 사마천처럼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기를 바랐다.

정적들에게 쫓겨나 다시는 고향 피렌체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눈감은 단테처럼,

신곡(神曲)같은 불후의 명작은 아니더라도,

젊은 날에 맞서 싸웠던 그 더러운 지역주의와 수구냉전세력의 몰락을

파란만장한 회고록에서나마 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기를,

10년 간 진보했던 민주주의와 50년 만에 딴딴한 얼음이 풀려 이룬

남북경협과 고리가 끊긴 정경유착의 증언자로 살아남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신은 모질지 못해서,

몇 백억, 몇 천억을 받고도 속죄하지 않은 채 얼굴을 내밀 수 있는

뻔뻔한 자들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해방 이후, 그 잘나빠진 집권 극우, 보수들 중에

국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수모를 피하기 위해 제 명줄을 끊었다는 자들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혼자서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다 짊어지고 무덤으로 간 자도 없었다.

 

전쟁터에선 늘 빽 없는 이들을 최전선에 내세우고

군대 가는 것도 무서워, 저는 물론 자식까지 죄다 병역 미필에다

손자 대(代)는 원정출산, 미국시민으로 키우면서

겉과 속이 다르게 안보와 반공을 떠들던 자들이,

나라 곳간 거덜 내 IMF 구제 금융 받고

수 백 만의 일자리와 가정을 작살내고도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며

사죄 한 번 한 적 없이 두꺼운 낯짝으로 컴백한 자들이,

북에 대한 증오의 망령에 사로 잡혀 10년 간 공들여놓은 남북관계를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려놓고

북-미 직접수교, 스스로 왕따의 길을 재촉한 미련한 자들이,

지나간 10년을 무조건 부정하며 부동산 투기 규제의 빗장을

모두 걷어버리고 그나마 공평했던 경쟁의 규칙을 모두 헐어버리고

지역의 균형발전과 아래로 향한 복지의 물길을 되돌려버린 무식한 자들이,

삽질과 토목이 유일한 미래 산업으로 보이는 그 철저한 사팔뜨기들이,

퇴임한 집권자의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며 고향으로 내려가

스스로 위리안치(圍籬安置)한 당신의 뒤를

권력의 미친 개(犬)들을 풀어 쫓게 했다.

 

나는 당신의 허물들을 변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누가 돈을 받았든,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한 잘못은 물어야 한다.

하지만 확증도 없는 혐의를 매일 하나씩 언론에 흘리며 모욕한 미친 개들의 소리는

칼집에 칼을 꽂은 적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도 당신은 치졸하고 무도(無道)한 자들이 판치는 이 증오와 보복의 정치가

종말을 고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았어야했다.

 

 

그자들은 이렇게 선동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권력을 빼앗겼던 그자들에게 악몽이었던 그 10년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의 대다수에겐 다시 찾기 어려운

진짜, ‘잃어버린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나는, 감히 예언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는 모두 금지되고, 인터넷에 글 썼다고 구속되고,

수구신문이 방송까지 진출해서 여론을 장악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도는 더 심해져서 지역은 더 피폐해 지고

재벌과 건설족들의 배는 더 불러오고, 현대판 노예 계급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고, 용산 철거민 참사가 몇 번 더 되풀이 되고

비싼 사교육을 못시키는 부모의 아이들은 영원히 하층계급,

소수를 밀어주기 위한 바닥 돌로 깔릴 것이다.

소수가 장악한 성채에 끼기 위해, 그들이 인심 써서 문열어놓은 몇 자리를 놓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경쟁이 횡행하는 살벌한 사회,

거기서 탈락한 이들이 강원도의 펜션에 모여 집단 자살하는 절망의 사회,

슬프게도, 이런 일들은 당신이 눈을 감은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당신의 집권 시 실정을 변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듬지 않은 말과 서투른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부동산 가격을 날 뛰게 해서 집 없는 자들의 설움을 키우기도 했다.

소수에게 부와 특권이 집중되는 광란과 절망의 흐름에

완전한 제동을 걸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흐름에 경고등의 역할은 했었다.

이제 한국사회에 그런 경고등은 사라졌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당신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추모하는 대신 원망한다.

당신은 그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았어야 했다.

당신을 물어뜯은 그 더러운 개들을 용서하기 위해,

죽지 못해 사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당신은 견디고 살아남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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