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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깐데

세상사는 예의.

때론, 내리는 비에 흠뻑 젓고 싶다.




며칠간 쏟아진 장맛비에 정화조 뚜껑이 깨져 빗물이
들어가는 걸 보고
철다리가 꺾인 헌쇠 밥상을 가져다 덮으니 딱, 이다

날이 밝자 어머니는 헌 밥상을 들고 들어와
행주로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그 밥상을 정성껏
닦으신다

아야,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던 밥상인데 똥통 뚜껑으로
덮어야 쓰겄냐
그까지꺼 똥통에 빗물 드가는 게 뭣이 중하더냐

언제나처럼 냉장고 뒤 밥상 자리에 그대로 꽂아두신다


성 시화 시 ‘헌 밥상에 대한 예의’ 모두
- 『삶이 고단할 때면 꺼내 읽는, 엄마』
(달아실, 2021)



* 세상이 바뀌면서 ‘소중한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간다. 세상속에 섞여 살면서 ‘세파’라는 세상의 단련에 감성이나 감정, 막연하게 가지고 왔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나 오래된 것들에 대한 소중함도 ‘새로운’것에 대한 욕심으로 추억도 의미도 잊고 간편하게 ‘분리수거함’에 버리곤 한다.

예전에 어머니께서는 헌옷아라도 쉽게 버리지 앟으셨다. 입을 수 았는 옷들은 손질을 해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입을수 없는 옷들은 모두 모아놓고 불을 붙여 태우셨다. 사람의 체온이 담긴 옷은 아무곳에나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했지만,, 빠르게 바뀌는 ‘가치’의 변화가 때론 나를 당황하게 한다.

예전에 코로나 이전에 ‘황학동’에 간적이 있다. 세상의 쓰레기 같은 낡은 물건들이 산같이 쌓여 천원에서 몇만원까지 팔리는 것을 보고 실소 한적이 있다. 필요하면 쓰레기도 다시 살아남는다. 내게 소중하고 잘 쓰고있는 물건들 내 사후에 누가 물려받을지,, 아니면 고물이라고 버림을 받을지?,, 내 손때 묻은 카메라들이나 만년필, 잡다한 시집이나 책들이 허술하게 버려지는게 아닌가 하여 새 주인이 될만한 사람을 만나면 나눠주곤 한다.

‘삶이 고단 할 때’ 펼쳐보는 책들과 꺼내어 딱고 렌즈를 맞쳐보던 카메라,, 줄겨듣던 Tape, 이나 LP, CD 이에 따라 묻혀있는 Player 기기들... 하나 하나 내 추억과 손때묻은 정겨움 때문에 골동품도 아닌 쓰레기다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을 아껴 정리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각이 든다. 이것도 내 ‘손 때’묻은 물건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있겠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