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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모든.. 가식 앞에서.


모든 '가식' 앞에서 나는 자유롭고 싶어라,,,,, 여행
조회(579)
이미지..,love. | 2008/03/02 (일)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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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약한 내 본체(本體),, 바르게 직시함이 새롭게 출발함이다!!!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제 손으로 제 몸을 구석구석
훓어 나가는 것은 한두 주일 동안의 때를 밀어내는 일만이 아니다
일생(一生)이여, 이 부피만큼 살아왔구나,
질그릇처럼 아슬아슬하다, 대저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내가 있었던가.
나의 용적(容積)이 탕 밖으로 밀어내는 물?
거짓이 나를 만들어 놨을 뿐,
두뇌의 격한 질투심, 열등감, 뭐 들어내기 좋아하는
허영으로 적재된 서른 몇 해. 헐떡거리며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 왔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성자(聖者)다, 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레 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 했구나
벼락맞은 청춘(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 보다 요행 이였을 것이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묵묵부답인 소장농이여, 그는
그가 떠나지 못한 신월리(新月里) 북평(北平)의 방풍림(防風林) 아래 윤씨
땅을 새마을 모자 채양으로 재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웃 도암재를 넘어 그는 장독 굽는 도공(陶工)이 되려 했으리
그는 소목(小木)이었을까, 말없이 성깔 괴팍한 미장이 였을까
아 그는 대처에 나와 그의 바람기로 인해 노가다가 되었으리라
극장 간판장이 였거나 방직 공장 경비원 이였거나 철도 노동자 였거나
추운 삶의 시퍼런 정맥을 따라 청계천(淸溪川)
평화시장까지 흘러 갔으리라, 그는 땔나무군, 껌팔이, 신문팔이
고물장수 였었다.
역 뒤, 극빈(極貧)의 검은 강가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빈 창자로
서 있었고, 내장에 콸콸 넘치는 쓴 하수도,
뜨거운 내 눈알은
붉은 회충 알들이 청천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지러웠다, 현기증 사이로 본  부, 모, 형, 제,
전 가족이 각각이 고아였다.
자원 입대한 형이 떠난 후
조개 석탄을 주우러 침목을 세며 남광주(南光州)까지 걸어 갔었다
산물(産物)을 가득 실은 여수발 화물 열차가 지나가고
최저생계 이하에 내 와 있는 차단기,
적신호(赤信號) 앞에 서 있던 불우한 날들이여,
풍진(風塵) 세상 살아오면서 나는 내 삶에, 그러나
그 모든 날들을 부재(不在)로 만들어 버렸다,
고백은 지겹다.
모든 자화상이 휴측하듯, 나는 내가 살던 노천?(露天)을 복개했다
캄캄한 여러 지류가 나를 지나갔다
지나갔었다, 그리고 지나간다
지금 나는 알몸이다.
내 손이 나를 만진다, 이것이 나다.
때를 벗기면 벗길수록 생애(生涯)는 투명하다.
낫자국, 칼자국, 자전거에서 떨어져 무르팍에 남긴
상처가 내 몸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돌아보니 몇 바가지 물로 나와 같이
목전의 일생을 씻어내는 알몸들,
알몸들이여, 나의 현장 부재중인 '나'들이여.
그러나 등 좀 밀어 달라고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다.
이태리 타월을 들고 나는 한 노인의 등뒤로 다가갔다
닿지 않는 나의 등으로.
 
 
 
  -황지우 시 '나의 누드'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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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분'을 모두 잃고 서걱대며 몸을 비벼대는 겨울갈대,, 봄이 오고 있다!
 
 
 
-잇몸이 들뜨고 피가나며,, 코와 입주변이 붓고,, 만성적인 두통에 어깨가 결림이 찾아옴은 몸이 나에게 "제발, 잠을 자라고" 적 신호를 보내옴 인데,, 이길수 없는 통증에 새벽에 깨어나 창밖을 보다가 치솔과 면도기를 챙기고 목욕탕을 찾아 향한다. 3~4년 동안에 잊고 지냈던 목욕,, 바뿌게 살다보니 몸을 담그기 보다는 샤워로 몸을 씻어냄이 편했던 나는 그동안 탕속의 편안함과 나른한 몸의 풀림을 그리워 하면서도 의식적으로 목욕탕을 거부해 왔다. 약의 부작용으로 몸이 변형되어,, 이후로는 대중이 모이는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워 졌기에 온천욕이나 친구들과의 목욕도 꺼려 왔던 것 같다. 간만에 몇차례 망설이다가 버스를 타고 대중탕이 있을 만한 곳으로 나갔다. 2월 11일, 월요일 이후에 집을 나선지 20일이 지났다. 누구를 탓할까? "모두가 내 탓이고, 내 탓이며, 내 탓이다!!!",,, 가족 모두가 고통을 받음 보다는 내 한몸이 '아품'이 났다는 생각에서 집을 나섰지만,, 생각보다는 데미지가 컸었던 모양이다
 
-이곳저곳을 방랑하고, 아버님의 묘소도 다녀오고,, 마음을 추스렸다고 생각 했는데,, 이처럼 마음을 내어놓고 편안해 지기는 20여 일이 걸렸다. 산다는 모습에서 내 '삶의 자존심'을 버리기 보다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당하고' 싶었는데,, 삶의 질곡에서 그래도 살아가는 '길'을 찾는 나는 약삭빠른 인간이다. 무엇보다 한창 마음의 기복없이 공부에 열중해야 할 두 딸들에게 미안하다. 이것저것 잡다한 정리를 하고 이제는 거울앞에 서서,, '발가 벗은' 내 몸을 바로 본다.  이 글은 고통스럽다. 날 잘아는 지인이 이글을 보면 "바보 같은 놈!" 이라 욕하겠지. 나도 많이 약해진 모양이며,, 그래도 이 모습이 편하니,,, 나도 '체념'을 배운 모양이다. 아니다, 아직은 이르다. 내 자신에게 온전히 침잠(沈潛)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날들이 팔요하다. 개운하다, 수시로 몸을 씻어 내다가 두어주 만에 몸을 깨끗이 씻어내니,, 마음까지 깨끗해 진다.
 
-내 삶에는 '인스탄트'라는 말이 없을 줄 알았다. '인스탄트 커피','인스탄트 라면',,, '인스탄트 인생'...  다소 촌스러운 정겨움이 물씬한 이곳에서 나는 부활을 기다린다. 정거장에서 내려 다소 사람이 사는 이곳에서 촌로에게 목욕탕을 물어 오래간만에 "어서오세요!" 하는 정겨운 소리를 들으며,, 비록 탕속에 오래 잠기지 못하더라도,, 사우나는 들어갈 엄두도 못내지만,, 삐쩍마른 어르신의 헛기침 소리와 동네 사람들의 나체가 다소 쑥쓰러운 인사 소리,, 아이들의 "뜨거운 물은 싫어!"하는 앙탈까지,, 모든게 편하다. 목욕탕을 나서서 아직도 다소 이른 시간에 기사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정식 백반'을 시켜 먹는다. 조개든 미역국에 구운 김, 나물 하나, 깻잎조림, 김치, 무채,, 커피까지 한잔 내려 마시고 이제는 몇가지 필요한 물건을 산다. 슈퍼가 많다는 식당 아저씨의 말과는 달리 큰 슈퍼가 보이지 않는다. 이름만 슈퍼인 곳에서 카드로 계산을 하고 잇몸 치료제와 두통약을 산다. 이제는 자잘한 고통은 싫다. 실컷 울고 나니 개운 해 졌다, 이제는 울지 않고 웃으며 살아가리라. 봄의 화사함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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