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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숲에 들다

래여애반다라( 來如哀反多羅1~9 )

전등사 대웅전 나부상.









來如哀反多羅래여애반다라 1
이성복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컥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래여애반다라 2


바람의 어떤 딸들은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는 것
돌아가면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와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드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 바랜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
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
탯줄 끌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래여애반다라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來如哀反多羅4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삶에 숫기 없기를,
나는 이미 뿔을 가졌으므로
내 삶에 발톱 없기를!
눈 대신 쇠꼬챙이를 가졌으므로
내 눈에 물기 없기를!
지금 내 손에 감긴 때 묻은 붕대,
언제 나는 다친 적이 있었던가
지금 내 머릿속 여자들은
립스틱 짙게 처바른 양떼들인가
해묵은 상처는 구더기들의 집,
물 많은 과일들은 물이 운 것이다





래여애반다라 5


초록을 향해 걸어간다
내 어머니 초록
초록 어머니

가다가 심심하면
돼지 오줌보를 공중으로 차 올린다
하늘의 가장 간지러운 곳은
향해 축포 쏘기

그리고 또 가시나무에
주저앉아 생각한다
사랑이 눈이었으면 애초에
감아버리거나 뽑아버렸을 것을!

삶이여, 네가 기어코
내 원수라면 인사라도 해라,
나는 결코 너에게
해코지하지 않으리라





래여애반다라 6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을 헤아리는지 모르면서
끓는 납물 같은 웃음을
눈 속에 감추고서
한낮 땡볕 아스팔트 위를
뿔 없는 소처럼 걸으며
또 길에서 너를 닮은 구름을 주웠다
네가 잃어버린게 아닌 줄 알면서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어떤 누구인지
어디서 헤어져서
어쨌길래 다시 못 만나는지를




래여애반다라 7


불어오게 두어라
이 바람도,
이 바람의 바람기도

지금 네 입술에
내 입술이 닿으면
옥잠화가 꽃을 꺼낼까

하지만 우리
이렇게만 가자,
잡은 손에서 송사리떼가 잠들 때까지


보아라,
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
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보아라,
네 손이 내 손을 업고 간다
죽은 거미 입에 문 개미가 집 찾아 간다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
걸으며 꾸는 꿈은
壽衣수의처럼 찢어진다





   來如哀反多羅 8


  내게로 왔던 것은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오늘 같이 자주지 못해 미안해요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교황은 자주감자 꽃 옷을 찢고
  개들은 묵주반지 돌리듯 이를 간다

  피오레 파올로 파솔리니,
  그대의 愛液을 맨머리로 받으면
  내 이마에 돗자리 자국이 생겨난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죽음은 내 성기 끝에서 피어날지라도
  그대의 음부는 흰 백합을 닮을 것!




래여애반다라 9


고운 장구벌레 입속으로 들어가는
고운 입자처럼
생은 오래 나를 길렀네

그리고 겨울이 왔네

허옇고 퍼석퍼석한 얼음짱,
막대기로 밀어 넣으면
다른 한쪽은 버둥거리며 떠오르고,

좀처럼 身熱은 가라앉지 않았네

아무리 힘줘도
닫히지 않는 바지 자크처럼
無聲의 아우성을 닮았구나, 나의 생이여

애초에 너는 잘못 끼워진 것이었나?








- ‘래여애반다라’는 시인 이성복의 7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인은 10여년 전 경주의 불상전시회를 보고 ‘래여애반다라’ 연작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시는 고통과 절망을 마주하며 사는 현대인을 노래한 21세기판 ‘풍요’다. 그는 ‘래여애반다라’를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맛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다(羅)’로 풀었다. 창령사 오백나한전은 또 하나의 ‘래여애반다라’였다.

어디 신라인들뿐일까. 예나 지금이나 노동은 고되다. ‘인생고해’는 싯다르타의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서러운 삶이다. 3만달러 시대가 무색하다.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 등 근대적 제도 속에서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으로 노동은 분화되고 영세 자영업자, 세입자, 청년 실업자 등 소외층은 늘고 있다. 결전을 앞둔 투우가 휴식을 취하는 장소를 ‘케렌시아’라고 한다. 노동에 지치고 삶이 서러운 현대인에게도 휴식과 충전이 필요하다. 두 차례 만난 청령사 오백나한상은 나의 ‘케렌시아’였다. 그들의 노래가 귓가에 쟁쟁하다. ‘래여래여래여/래여애반다라/애반다의도량(오라 오라 오라/오라 슬프더라/슬픔 많은 중생들이여).’

2019. 4월,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개최 소식. 전시장은 산사의 선방이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나한상들은 정진하는 스님 같았다. 좌대 위의 나한상은 제각각 다른 모습, 다른 표정이었다. 손을 모은 나한, 두건을 쓴 나한, 합장하는 나한, 가사를 걸친 나한, 바위 위에 앉은 나한, 보주를 든 나한 …. 한 자(30㎝) 남짓의 비슷한 크기의 나한상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였다. 윤곽도 분명치 않았다. 가까이 보면 그저 투박한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질감이 형상을 압도했다. 1~2m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때에야 형상이 살아났다. 미소를 띤 나한, 슬픔에 잠긴 나한, 찬탄하는 나한 …. 응시하는 순간 나한이 아니었다. 어느덧 어머니로 변해 있었고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한은 깨달음에 이른 석가모니의 제자를 말한다. 나한은 한때 번민하는 인간이었지만, 수행으로 해탈을 얻은 성자(聖者)다. 범인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올랐으니 동경과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십육나한도가 그려지고, 오백나한상이 만들어졌다. 불전에 모신 나한상은 조각이 정교하고 색깔이 화려하다. 남양주 흥국사에 모셔진 목조 십육나한상(보물 제1798호)과 영천 거조암 영산전을 꽉 채운 석조 오백나한상이 대표적이다. 옛날 사람들은 나한상을 모시고 평온과 무탈을 기원했다. 기우제를 올릴 때면 항상 함께했다. 나한이 질병을 없애고 재앙을 쫓는다고 믿었다.

창령사의 오백나한상은 다르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 수줍은 듯하면서 해맑다. 볼수록 친근하고 마음이 푸근하다. 떠받들어야 하는 존자(尊者)가 아니라 공감하고 위로하는 가족이자 친구다. 나한상은 조선 중기 창령사가 사라지면서 수백년 땅속에 묻혀 있었다. 땅을 고르던 농부가 발견해 빛을 봤다는 이야기는 중국 시안의 병마용 발굴기를 떠오르게 한다. 병마용의 무인상은 당시 진나라 사람을 모델로 했다는데, 창령사 나한상은 하나같이 조선의 얼굴이다. 이름대로 오백의 나한이어야 하는데 317구만 발굴됐다. 그나마 온전한 것은 64구이고, 나머지는 파불됐거나 훼불됐다. 부서지고 깨지고 마모된 나한상에 삶의 무게에 짓눌린 서민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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