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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울컥' 이라는 짐승...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
숨어있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
내 허물은 얼마나 돼지처럼 뚱뚱했던가

난 그걸 인정한다
내 청춘 꿈과 죄밖에 걸칠 게 없었음을

어리석음과 성급함의 격정과 내 생애를
낡은 구두처럼 까맣게 마르게 한 결점들을
오래동안 괴로워했다
나의 등잔이 타인을 못 비춘 한시절을
백수일 때 서점에서 책을 그냥 들고 나온 일이나
남의 애인 넘본 일이나
어머니께 대들고 싸워 울게 한 일이나
실컷 매맞고 화난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일이나
내게 잘못한 세 명 따귀 때린 일과 나를 아프게 한 자
마음으로라도 수십 번 처형한 일들을

나는 돌이켜 본다 TV 볼륨을 크게 틀던
아래층에 폭탄을 던지고 싶던 때와
돈 때문에 조바심치며 은행을 털고 싶던 때를
정욕에 불타는 내 안의 여자가
거리의 슬프고 멋진 사내를 데려와 잠자는 상상과
징그러운 세상에 불지르고 싶던 마음을 부끄러워 한다

거미줄 치듯 얽어온 허물과 욕망을 생각한다
예전만큼 반성의 사냥개에 쫒기지도 않고
가슴은 죄의식의 투견장도 못 된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변명의 한숨을 토하고
욕망의 흔적을 버린 옷가지처럼 바라볼 뿐이다

고해함으로써 허물이 씻긴다 믿고 싶다
고해함으로써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싶다
사랑으로 뜨거운 그 분의 발자국이
내 진창길과 자주 무감각해지는 가슴을 쾅쾅 치도록


나는 좀더 희망한다
그 발자국이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깨워 울게 하도록.



  -신현림 시 '창'모두








'지킬박사와 하이드' 처럼,, 내 안에는 '또다른 나'가 또다른 나와 더블어 나이를 먹었다. 생각해보면,,, 그처럼 '친숙한 관계'도 없을 턴데 밤낮으로 서로 싸우고 '눌러'대며 한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늘날 까지 살아온 듯 싶다. "울컥"이라는 이름으로도 표현이 가능한 때로는 이 '짐승'에 가까운 '나'는... 때로 제어하기가 몸시 힘들고,, 때로는 그 파괴의 쾌락이나 이기심에의 '달콤함'에 몸을 떨게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만큼 다른 모양의 성갹과 모습으로 사람들은 자라고 생활하며 자신의 '고유함'을 증명하며 산다. 한때는,, 모든 종류의 사람과 '교통'하며 살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오늘의 '이자리, 이나이'에 와서 다시금 절감하는 것은 사람은 정말 '다른사람'이 있고, 그 '수준의 차'를 인정하며 나름대로 거기에 맞추어 사람과 교제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건방진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세상의 삶에선 '차이' '벽'은 각 개인의 물질적, 정신적인 차이만큼 확실한 눈금으로,, 수준으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에는 어떤 '보편타당의 선'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라고 살아온 환경이나 교육, 삶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데' 이 모양과 형식에 따라서 '인격''무뢰'가 드러난다. 요즘와서 더욱 강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성인이 되어서의 인격은 어려서부터의 '가정교육'에서 기인한다.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의 거울" 이란 말은 그래서 '사실'이다.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돈이 많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거나 자식들에게, 이웃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 이런 모습도 좋지만,, 결론적으로 가족에게서 먼저 존경받고 주위에서도 본이 될수 있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라 나는 믿는다.

젊은시절,, "사랑은 '존경'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변함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자식과 어버이로 만나고, 스승과 제자로 만나고, 직장의 동료와 상사로 만나고, 이웃의 친구와 교제의 벗으로 만나고... 하루에도 수없이 이루어지고 헤어지는 만남에서 우리는 '선의(善意)의 만남'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은 원래 내 마음 같지가 않고, 내 뜻과는 어긋나는 일상이므로,, 그 어긋남으로 오는 상처나 아픔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사람들을 피한다면,, 자신은 결코 '성숙'하지 못한다. 성숙은 그만큼 많은 상처와 분노, 눈물로 자라고 결실을 맺는다. 50 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울컥'이라는 내 또다른 벗이자 짐승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울컥'이라는 짐승이 또다른 나이기에,, 다독이며 그 수준을 조절하며 동거동락 할 일이다. 결국에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 내 수준과 깊이만큼 세상을 보는 것. 더욱 더 나자신을 다독이며 상처 받지말고 웃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