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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그대 가까이 (1~5)/ 이 성복 시

어느 날, 문득 그리워하자..





1

바람에 시달리는 갈대 등속은
저희끼리 정강이를 부딪칩니다
분질러진 다리로 서 있는 갈대들도 있엇습니다

그대 가까이
하루 종일 햇빛 놀고
정강이가 부러진 것들이 자꾸 일어서려 합니다
눈 녹은 진흙창 위로 꺾인 뿌리들이 꿈틀거립니다
그대 가까이 하루 종일 햇빛 놀고



2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3

나무 줄기 거죽이 자꾸 갈라지고
읽을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집니다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밥 먹고 옷 입는 일 외에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멀쩡한 나무를 두드리니

잔 가지들이 놀라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한 글자만 허락해주십시오
저희에겐 한 글자만 허락해 주십시오

진흙창에 박힌 신발을 마른 풀에 비비며
저희는 돌아갈 일을 생각합니다



4

그대 계신 곳을 멀리
뒤돌아가다가
겨울 나무들이 선 곳에
나도 섰습니다

그대 비밀을 안다면
나도 그대의 비밀이 될까요
눈송이 입자처럼 고운 비밀이
내게도 있었던가요

지금은 멎어버린 샘 가의
돌무더기처럼
나는 버려져 있습니다

간간이 비 뿌리거나
바람 스치면
그대 이름 되뇌어보면서


5

그대 가까이 하루 종일 햇빛 놀고
해질녘이면 동네 뒷산을 헤벴습니다

신화나 예감 같은 것,
그런 것에나 쫓겨다니면서
지치면 겨울 나무들이 줄지어
섲 곳에 나도 섰습니다

한쪽 어깨가 바람에 깊이 패이도록
마른 나무들의 호흡을 받았습니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




* 모든게 소생하는 봄 빛,, 그 화사한 간지러운 따사함 속에서 반대되는 감정의 빛깔, 조금은 어두운 무채색 회색빛 죽엄을 만난다. 이순(耳順)을 갓 넘긴 나이에 닥쳐온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황스럽게 무신경 했던 일상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내 따귀를 날렸다. 그래, 내 주위에 언제나 일상처럼 ‘그 때’ 란게 잠복 해 있고 ‘ 내 일’이 될수도 있는데.., 몇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준비가 되어있던 아니던, 죽은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이란 어떤 느낌일까?…,

일상에서 루틴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하듯이 받아 들인다. 투석으로 받아야 하는 어떤 날카로운 느낌과 사나운 감정, 억울한 듯한 분노와 일상의 사소한 상실감도 이제는 가면이 내 얼굴인 듯, 잘 변하지 않는 표정과 얼버무린 알수없는 이상해진 미소로 잘 도색된 듯한,, 아무리 몸이 아프다 해도 일상이 쉽게 이해되고 당연시 되어서는 안되는데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를 않는다. 리셋(Re Set) 하듯이 나(?!)를 재생 할 수는 없을까!?…..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죽음이란 자기가 땅(세상)에서 할 일을 다한게 아닐까? 하는 마음. 웃고, 울고 아파했던 기억과 추억들이 히나, 둘씩 떠올라서 아프구나. 훗날에 일상에서 미련과 후회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을까?…,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 잘가라, 형아가 더 열심히 살게. 다시 만나자.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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