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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가을에 읽는 윤동주의 시, 몇 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을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시 '길' 모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
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내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워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모두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 윤동주 시 ‘소년’ 모두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가을이 되면 ‘하염없어 지는 병’이 다시 도지곤 합니다. 투석과 코로나로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세월이지만,, 퇴근 시에 지하철에서 내려 천천히 샛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향해 봅니다. 골목과 골목 사이로 때로 정겹게 느껴지던 동네의 작은 식당들과 작은 맛집들이 말없이 사라지고 텅빈 점포는 주인을 잃은 채 어두워져,, 가슴이 아픕니다.

가끔씩 식사를 혼자서 해결해야 하면 들르곤 하던 인심 좋던 선술집과 작은 곱창집도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섭섭 하였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입니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1박 2일로 떠나고 푼 마음에 2021년 1월의 끝자락에 미리 숙소를 잡고 비행기 예약을 마쳤습니다. 간만에 배낭을 꾸려 ‘길’을 찾아 떠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니 아직도 ‘청춘’인 듯 하여 혼자서 바보같이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