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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국화’ - 성장한 ‘숙녀’ 같은 꽃. 현관 옆에 국화 화분 하나를 사다가 놓으니 가을이 왔다 계절은 이렇게 누군가 가져다 놓아야 오는 것인가 저 작은 그릇에 담겨진 가을, 노란 가을을 들여다보며 한 계절 내가 건너가 가져오지 못한 시간들을 본다 돌보지 못한 시간 속에도 뿌리는 있다, 모두 살아 있다 흙 속 깊이 하얀 실뿌리를 숨기고 어둔 흙 헤집어 둥근 터널 그 속으로, 먼 내 속으로 오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쭈그리고 앉아 바라본 국화의 근본이여, 모든 계절의 초입이 나 몰래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어 손을 내밀어 그냥 가져다 놓기만 하면 분명 한 계절의 꽃 필 법도 한 것이다 국화는 현관 앞 계절의 환한 등을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국화를 보며 아! 노란 국화, 하며 가을을 말하기 시작한다 내가 가져다 놓은 한 계절, 저 국화 화.. 더보기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쫙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 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 더보기
블로깅을 하면서 2. '블로깅'을 하면서 2 - 나의 '존재' 그리고... 너의 '의미' 여행 나의 테마글 보기 여행 테마 보기 조회(205) 이미지..,love. | 2008/11/02 (일) 15:53 추천(2) | 스크랩(0)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류시화 시 '새와 나무'모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