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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7월의 시 - 茶山草堂 / 황동규

작지만,, 거대한 느낌으로,,





1
만나는 사람들의 몸놀림 계속 시계침 같고
"반포 치킨"에 묻혀 맥주 마시는
내가 지겨운 기름 냄새 같을 때
읽는 책들도 하나같이 맥빠져 시들할 때
알맞게 섞인 잎갈이나무와 늘푸른나무들이
멋대로 숲을 이루고 서서
눈발 날리는 강진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산초당에 오르곤 한다,
는 실은 거짓말이고
다산 초당은 달포 전에 처음 갔다
해가 떴는데 눈발이 날리는 희한한 날이었다
몇 대의 버스와 택시를 종일 번갈아 타고
강진의 귤동 마을에 도착했다
공터에서 차의 맥박이 끊어지자
흰 눈발이 앞창을 한번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열어 주었다.

2
바쁘게 뛰다 보면
온갖 냄새와 욕지기가 다 섞여서
멍하게 사는 것이 그 중 제일로 된다
혹은 띵하게 사는 것이......
예전 같으면 왕들이 그 사정을 눈치채고
아랫사람들에게 분부를 내리거나
친구들이 알아서 獄事를 일으켜
그대를 날오이처럼 싱싱한 곳으로 귀양보냈다
제주도 변두리나 두만강가에서
마음이 헐거워질 때까지 잊혔다 돌아온다면
혹시 진정한 "나"가 눈 앞에 보이지 않을까?
사는 맛이 화장 지운 제맛으로?
그게 안 되는 오늘날 마음이나마 유배보내야겠지
마음의 유배라니,
어느 고장에 가서 마음을 떨구고 오지?

3
떠나는 길이 떠올라야 한다
그대가 제주로 유배간다 하자
김포에 가서 KAL을 타면 빠르기야 하겠지
이젓저것 따지다 보면 그게 속도 편하고......
허나 아니지 그건,
제주 詩人 文忠誠씨가 호송관처럼 염라대왕처럼
왕방울눈 부릅뜨고 제주 공항에 나타나더라도
그건 귀양길이 아냐,
공항에서 몸검색을 하는 것까지는 유배 같지만
(혹 自決할지도 모르니)
땀구멍 하나 열지 않고 떠나며 끝나는
그런 귀양길이 어디 있어?
보다는 세면도구를 꾸려 가지고
새벽 일찍 터미널에 가서
첫출발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는 거야
(莞島 배 시간에 맞춰야 하니까)
톨게이트 벗어나면 곧 눈덮인 청계산이 나타난다
운 좋으면 길 양편으로 雪花가 따라온다
운이 나쁘더라도 옆자리에서
알맞게 화장한 젊은 여자가 졸며 어깨를 그대에게 기대거나
중년 남자가 읽던 주간지를 아낌없이 건네준다
그대도 잠깐 졸고
수염 없는 새우처럼 광주 터미널에 내린다.

4
시외버스로 나주 평야를 가로지르며
마음 가라앉히고 영암으로 다가간다
평범한 산들 사이에서 月出山이 나타난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을 오른편에 끼고 돌 때
그대 마음을 벗어 유리창에 걸어라
바위와 하늘이 서로 치차처럼 물려 돌고 있다
같이 내려앉고 같이 솟구치며 몸부림치고 있다
몇 해 전 大興寺行 때 뛰어들었던
월출산 남쪽 無爲寺 극락보전도 月南寺터 五層石塔도
몸부림 속에 물려 돌고 있다
솟구쳤다가 가라앉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대가 몸부림치고 있다
옆자리에서 소년 하나가
삶은 달걀을 먹다 말고 놀란 눈으로
그대를 찬찬히 쳐다본다.

5
강진행 갈림길 成田에서 그만 내린다
흰 햇무리가 하늘에 쳐 있고
성긴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 성긴 감촉을 더듬어
월남사 터, 혹은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 속으로
들어가 볼 것인가?
가서 잦아든 몸부림을 확인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도 마냥 고요했던 월남 저수지를 찾아가
홑이불처럼 내리는 눈발 속에서
견디다견디다 못해 고요를 깨뜨리고 싶어질 때까지
눈과 마음을 감고 기다릴 것인가?
이 고요 속에 갑자기 사람이 뛰어든다면
저수지 고기들이 모두 어이없어 하리라
생각에 잠긴 사이
마침 강진행 버스가 와 멎는다.
도로

6
강진은 조그만 고을
정류장 앞에서 하품을 하고 있던 택시 운전사는
엄청난 값을 불렀다
할 수 없군, 내일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돌아서자 곧 뒤에서 경적을 울리고
값이 반으로 깎였다
海南行 도로를 달리다가
세차장 있는 곳에서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어
강진만을 바로 왼편에 끼고 마구 흔들댔다
茶山丁若鏞先生 유적비가 나타나고
곧 萬德山 품으로 기어들어가
드디어 귤동 마을에 닿았다

7
가파른 언덕
옷벗은 벚나무와 옷껴입은 비자나무가
질탕하게 한데 어울리고
검푸른 대숲과 꽃망울진 동백숲이
띄엄띄엄 널려 있다
마른 물푸레나무 줄기 하나가 내 얼굴을 쳤다
귀가 먹먹해지고
낮은 음성이 들려 온다
"여기까지 와서 나무타령이 웬일이뇨?"
"제주로 귀양가다 월출산에 마음 앗겨
莞島길 잃은 사람올시다
숲이 하도 그윽하길래......"
"아니다, 네것은 여행이지 귀양이 아니다"
"귀양과 여행이 뭣 때문에 다릅니까?"
"여행에는 폭력이 없느니라, 삶의 한쪽 턱밖에 들어 있지 않지"
"그렇다면......?"
음성이 끊겨 올려다보니
기와집으로 단장한 草堂이
늦오후 햇빛 속에 미소 띠고 서 있었다


8
丁石 바위가 정답고
茶山東庵도 山房도 두루 마음에 들지만
놀라운 것은 동편 언덕마루에 있는 天一閣
(茶山이 붙인 이름치고는 좀 촌스럽지만)
강진만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바다와 땅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 안고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는 조그만 마을들이 숨어 있고
마을 사이에는 가느단 길들이 그어져 있었다
발밑 강진읍 쪽으로
동백과 사철나무로 가득 채워진 飛來島 양편으로
거짓말처럼 돛단배 한 척씩 들어오고 있었다
오른편 하늘에선 성긴 눈발이 날렸다
두 손 무낑ㄴ 채강진만을 내려다보는
한 사내의 모습이 마음 속에 비쳤다
눈이 갑자기 환해지고
봄의 송진 냄새가 풍겨 왔다
어디선가 탁 소리가 나고
오래 용서되지 않던 친구 하나가 마음 속에서 해방된다
(이 자슥아!)
점퍼의 지퍼를 내리고 심호흡을 한다
몇 년의문으로 남아 있던 예이츠의 詩 한 가닥이
배호의 노래처럼 우습게 풀린다.


9
옆에 놓인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茶山이 차 달일 때 썼다는 藥泉물을 뜬다
샘안에 눈길을 주자 두꺼미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버리려던 물을 그냥 들고 마신다
참 달군!
마른 연못 속에서
붉은뺨멧새 두 마리가 마음놓고 푸드덕거리다 날아간다
새가 날아간 자리에서
한 사내가 세상을 마주하고 앉는 공간이 완성된다
하늘에 다시 날리는 눈발
눈송이 몇은 천천히 內臟에서 녹이리라.


- 황 동규 시 ‘茶山草堂 ‘모두
[견딜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 문학과비평사, 1988.



- 21년의 1월에서 6월까지,,, 참 빠르게, 속절없이 흘러간 듯 싶다. 2년 가까이 끌어오던 코로나19는 변종에 변종을 낳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간의 삶은 이어져야 하는 법. 언제나 그랬듯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우리는 이 때에 맞는 우리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환경’에 무섭게 적응한다. 7월이다. 7월, 뭔가 좋은 일이 있을것 같지 않은가!?… 행운 같은 ‘럭키’한 일이 나에게 안 일어 날 지라도 다른 ‘이웃’에게 라도 좋은 일이 있다면,, 나 또한 기쁘게 웃어 줄 일이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르겠지만, 지금의 이 순간과 부딪끼는 모든 상황들이 나에게 ‘최선의 노력’을 요구 한다. 닥치는 삶이 고통스러울 지라도 웃으며 그 길을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