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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평생 할 줄 아는 것이
뱀 구멍과 마누라 거시기 파는 것이었다는
뱀통 메고 산기슭 떠돌다가 벼락 맞아 죽은 땅꾼의
버려진 산소에도 잡목이
정수리까지 박혀 쓸쓸하다.
친구도 친구 자식도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울먹해지는
이민 간 친구 빈집 마루에 가득한 흙먼지
병을 얻은 친구의 홀아버지는
읍내 큰아들 집에 구들을 지고 누워 있단다.
어머니가 걸어서 시집왔다는 고개는 파헤쳐지고
개울 건너
경순네 빨간 함석지붕은 헐려 보이지 않는다.
지초실 종기네 민구네 옛집도
눈이 흐려 분간할 수가 없다.
교회당 사모는 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소문이 돌고
젊은 여자의 팔 할이 다방아가씨란다.
겉늙은 내 시골 동창과 살던 다방아가씨는 도망쳤고
방앗간집 며느리 셋도 다방아가씨였는데
농자금을 털어 모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소고개 넘어
잘생긴 스님 하나에 보살이 셋이나 되는
된장 고추장을 많이 담아 장독이 많은 새 절 법당에는
벌써 죽은 시골 동창 사진이
빙그레 웃고 있다.
꿀벌이 분주한 재당숙네 마당을 지나
오십 중반에 폐가 무너진 아버지가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퉤퉤 가래침을 뱉으면
뒤꼍에 있던 닭들이 겅중겅중 달려와
가래침을 맛있게 주워 먹던 옛집.
마당에 파도처럼 쓰러진 망초꽃대를
마구 밟아보다가
무너진 측간 똥독을 들여다보다가
쥐똥과 새똥이 범벅된
썩은 마루에 앉아 옛날을 생각한다.
나도 돈돌배기에 누운 아버지 나이가 되려면
십 년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무능하고 어린 처자식들을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이 서러워져
억새 엉엉 우는 산소에 넙죽 절을 한다.

 

   - 공광규 시 '엉엉 울며 동네 한바퀴' 모두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입추도 지났건만,,, 불볕더위, 늦더위가 더 기승을 부린다. 한낮에는 거의 그로기 상태, 더위에 꼼짝을 못하고 시원한 냉수에 냉커피, 팥빙수 같은 찬음료를 입에서 떼지 못한다. 오늘은 '적멸' 이란 단어가 하루종일 머리속을, 입가를 맴돌았다. 적멸, 적멸이라... 이 단어와 더블어 범어사의 사대천왕이 그동안 지나쳐왔던 수많은 사찰들의 나찰상들이 머리를 맴돌아,, "내가 왜 그러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을 깨물었으니... 봄에 휴가를 다녀온 관계로 무더위에도 하루도 쉬지못하고 나름대로의 복잡함과 싸워왔더니,, 그 후유증이 자믓, 심각하다. 누구말따나 심한 더위탓에 더위를 먹은 것인지,, 그래도 체력을 생각하여 하루세끼를 꼬박 찾아 먹고 있으나 그것도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이 늦더위만 잘 넘기면 올해의 고비는 넘기는 것인데,, 지혜로운 처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혼돈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간만에 시사랑의 벗들에게 문자를 한통 보냈더니 10통에 3통의 답장이 왔다. 모두들 무더위에 지치긴 지친 모양이다. 한 회원 왈~ "날씨가 더우니 시도 시들해 지네요" 라니,, 나만 무더위로 고생하는게 아닌 모양이다. 이런날은 왠지 공광규의 시가 읽고 싶어진다. 내가 고른시는 '엉엉 울며 동네 한바퀴'~~~ 누군가가 "의미심장 하다" 라고 하는데,, 제기랄 '의미-심장' 하기는,, 메롱이다. 사는데 의미를 안두는 것도 문제지만, 말끝마다 의미를 담아서 골똘하면 그것도 병이된다. 사는게 뭐 별거있나?! 더위에 지치면 잠시 시외로 빠져서 숲이나 계곡에 들러 발이라도 담그고, 그도 안되면 시원한 까페에들러 냉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기분전환이 되는 것을,,, 사는데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 하지는 말자. 나 자신을 잘 컨트롤 하자. 그것이 필요한 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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