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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내 마음의 작은 기억 한 조각.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수선소집
목포댁 재봉틀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졌다 고전
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세상에는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가
나도 나를 버리는데 반생이 걸렸다
걸려 있는 연(緣)줄 무슨
연보처럼 얽혀 있다 저 줄이…… 내 업을
끌고 왔을 것이다 만남은 짧고 자국은
깊다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다

- 천 영희시 ‘사라진 것들의 목록’ 모두



* 예전에 시간이 나서 ‘옛 장소’에 찾아 가본적이 있다.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장충동에서 약수동으로 이사를 갔을 때,, 국민학교 3학년 이었나? 철없게도 식구끼리 살던 큰집에서 세를 든 사람들이 모여살던 동네는 구불구불한 골목도 많고 내 또래의 친구들도 많아 신기(?)해서 잠시 즐거웠던것 같다. 홀로 남겨져 시간이 많아진 하교 후, 배고품이란 걸 그때야 알았고 만화방에 일정한 시간이면 모여드는 또래 꼬마들의 10원이 ‘벤과 베라’를 볼수있는 입장료라는 것을 알게도 됐었다.

군에서 제대후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찾아갔던 장충동과 약수동은, 모든게.... 변해 있었다! 장충동 옛집은 담장이 이렇게 높았나? 싶게 높게 담장이 쳐져 있었고,, 약수동의 초입에 있던 약수시장과 극장,, 길가에 늘어 놓고 팔던 만화책과 중고책과 잡화점, 구불구불 정겹던 골목도 그골목에서 뛰어 나오던 현태나 가끔 빵을 나누어 주던 정겨운 주인집 수연이 누나도.... 모두 사라졌다.

이순의 나이에 시를 읽다가 문득, 국민학교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찾아 가 보았던 ‘청구국민학교’ 내 기억에 거대했던 오래된 호두나무는 여전한데,, 내 기억속의 사람들은 모두 소식을 알 수가 없었지... 세월을 몸에 익히며 잊혀져 가는 모든 ‘이미지들,,’, 문득 그리워져 밤새 잠을 못이룬 핑계에 이렇게 적어본다.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지만, 내가 소천하면 이 작은 기억들도, 사라지겠지만,, 지금은 문득, 그리워한다. 현태, 수연이 누나... 언젠가 볼 수 있을까? 서로 보아도 얼굴이나 알아 볼 수나 있을까? 괜히 부질없다 하는 생각에 씁쓸하게 웃어본다.


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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