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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

김영원 시인의 詩 읽기. -끈 / 김영원 그렇게 수고하시던 여섯째 날 잠시 짬을 내신 하나님이 바둑의 신 알파고와 한 판 대국을 벌이셨다 반상의 우주에서 실수는 금물이다 어쩌다 자충수를 두고 발목을 잡힌 하나님 밑줄 치고, 복기하고 장고 끝에 그야말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구사일생으로 꽁무니에 퇴로를 확보하고 끈을 하나 묶어놓은 것인데 질기고 영민하긴 괄약근만한 끈도 없다 기습적인 복병들이 허세인지 실세인지 재빨리 알아채고 때와 장소를 가려 절묘하게 열고 닫는다 생사를 책임지는 끈, 평생 써먹어야할 상책이다 우리 할머니, 어느 날 속곳에 핀 애기똥풀꽃 끈이 때를 안다는 뜻이다 - 의자가 많은 골목 / 김영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의자는 있어도 한 번만 앉아본 의자는 없는 골목이다 불타는 파마머리로 정직한 거울을 감쪽같이 속여먹.. 더보기
삶과 죽엄에 대한 시선. 꽃꿈이었다 수선화 한 송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슬프네 슬프네 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슬프다고 나에게 도착하는 것과 슬프다고 나를 버리는 것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아침, 꽃들에게 물을 주면서 트로트 가수처럼 흰 꽃에 게 물었다 새삼스럽게 네가 왜 내꿈에 나와 꽃꿈을 꾸는 동안 코로나 확진 받고 한 청년이 다섯 시 간만에 죽었다는 뉴스가 시청 앞을 통과하고 반포대교를 건너 거제 저구항에서 첫 배를 타고 소매물도까지 건너가는 동안 이윤설 김희준 시인이 죽고 최정례 시인까지 죽음을 포개는 동안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데 베란다에서 수선화 한 송이가 신나게 피고 있는 거야 죽음은 꽃과 별과 죽은 자들의 변방에서 얼어붙은 채 감쪽같이 살아 있었던 거야 한 번도 붉어 보지 못한 이 흰 꽃이라도 사랑해야지 사 랑해야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