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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장영희 - 마음의 체취.


우리'삶'의 향기 - '마음의 향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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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love. | 2006/01/05 (목)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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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냄새를 묘사할때 좋다, 나쁘다, 향기롭다, 역겹다등의 객관적 형용사를 쓴다.
그렇지만 가끔씩 냄새에도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기쁜냄새, 슬픈냄새, 미운냄새, 반가운 냄새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물리적인 사실과는 상관 없이 각자의 경험에 의해 그 냄새에 감정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을 고하며 준 꽃냄새는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영원히 슬픈 냄새로 기억될수 있고, 어렸을 때 콩서리하여 구워먹다 새카맣게 타버린 콩 냄새는 그리운 냄새 일수 있다.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아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대충 짐을 싸 길을 떠났다. 비행기에 들어서자 낯익은 냄새, 그것은 바로 이별냄새, 그리고 동시에 가슴 설레는 희망의 냄새 였다. 오래전 유학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때의 두려움, 슬픔,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후에도 여러번 비행기를 탔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 어느 비행기를 타도 그 특유의 냄새가 같은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LA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미국 특유의 공기냄새가 났다. 옅은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하고, 그냥 횡하게 넓은 공간을 스치는 바람냄새 같기도 하다. 그것은 조금은 흥분되고 또 조금은 붕뜬 느낌,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한 타향의 냄새다.
 
-지금 나는 LA 근교의 산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에 앉아 이글을 쓰고 있다. 미국문학 관련 책들을 보기위해 고물 수동 엘리베이타를 타고 지하 서가로 들어오는 순간 코를 스치는 독특한 냄새, 무어라 형용할수 없는, 어딘지 측측하고 매캐한 오래된 책 냄새다. 이렇게 책 냄새를 맡고 가르치는 일이 내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런저런 일에 부대끼고 시달리며 얼마간 까맣게 잊고있던 냄새다.
 
-서가를 흩어 보는데 프랜시스 톰슨이라는 영국시인에 관한 책들이 꽃혀 있다. 대학 다닐때 영시개론 시간에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배운적 있다.
" 나는 그로 부터 도망갔다. 낮과 밤 내내 그로 부터 도망갔다. 시간의 복도를 지나 내 마음의 미로를 지나, 나는 그로 부터 도망갔다. 그러나 그는 늘 내곁에 있었다. "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미있는 비유로 묘사한 이시를 가르치며 교수님은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통난 사람은 심통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 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모두 다 주위에 마음이 체취처럼 풍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얼마전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 했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진행자가 꿈이 무어냐고 묻자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읍니다. "라고 답했다.  "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읍니다. 집이 크던 작던, 비싼 가구가 있던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읍니다. 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
 
-오래된 책의 향기속에 파뭍혀 앉아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내 집의 냄새는, 아니 나의 체취는, 내 마음의 냄새는 무얼까?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 교수)
 


-영문학자, 번역작가, 에세이스트, 서강대 영문학교수.
3년전 유방암 수술 완쾌후 다시 발병,  현재 척추암을 앓고 있다.
 
-죽음도 주눅 들만큼 환한 얼굴로 병과 싸워 나가고 있는 그녀는 '나를 살게 하는 근본적 힘은 문학' 이라 말한다. 암이 재발 하기전 그녀는 이런 글을 썼다.

" 삶의 요소요소 마다 위험과 불행은 잠복해 있기 마련인데, 이에 맞서 '파괴 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그 싸움은 너무나 비장하고 슬프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 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 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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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희, 동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녀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주변에서 보아 왔던 인간적인 성숙함, 우리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이처럼 '잘사는' 열심히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나 오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흩트러지는 나를 발견 할때, 삶의 위기의 순간에서 그녀는 나에게 삶의 생생한 교훈을 준다. 우리의 삶,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열심히'사는게 우리의 '몫'이다.



 
 


** 이 글을 정리하자니 몇일전 우리의 곁을 떠난 장영희 교수, 그 자유로운 영혼이 다시금 그립다. 내세에서는 육신의 부자유에서 벗어나 더욱 더 활기차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사시길,,,  고인의 명복을 기원 합니다.  

                                                             - 2009년 5월 21일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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