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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 쓸쓸한 영혼

‘자유’와 평화 - 신동엽 시.

너에게 ‘행운’을 줄께..




* 네잎클로버는 ‘행운’이고, 세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행운을 찾느라 지천에 널린 행복을 잊어버리고 산데..,




아담한 산들 드믓 드믓
맥을 끊지 않고 오간
서해안 들녘에 봄이 온다는 것
것은 생각만 해도, 그대로
가슴 울렁여 오는 일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또 가을
가을이 가면 겨울을 맞아 오고
겨울이 풀리면 다시 또
봄,

농삿군의 아들로 태어나
말썽 없는 꾀벽동이로
고웁게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워딀 때 걷워딀 듯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 짤랑
꽃가마나 타 보고
환갑 잔치엔 아들딸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평생 살다가
조용히 묻혀가도록 내버려나
주었던들

또, 가욋말일찌나, 그러한 세월
복 많은 가인(歌人)이 있어
봉접풍월(蜂蝶風月)을 노래하고
장미에 찔린 애타는 연심을 읊조리며
수사학이 어떠니 표현주의가 어떠니

한단들 나 역 모르는 분수대로
그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자탄에 맞은 사람
태백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 제비 돌아와 흙 물어 나르면
솟아오는 슬픔이란 묘지에 가 있는
누나의 생각일까……?

산이랑 들이랑 강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머지 않아 나는 아주
죽히우러 가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이라.

잘 있으라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구름이 끼던
두번 다시 상기하기 싫은
인종(人種)의 늦장마철이여

이러한 노래 나로 하여
처음이며 마즈막이게 하라
진창을 노래하여 그 진창과 함께
멸망해 버려야 할 사람이
앞과 뒤를 헤쳐 세상에
꼭 하나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
두고 두고, 착한 인간의 후손들이여

이 자리에 가는 길
서낭당 돌을 던져

구데기,
그런 역사와 함께 멸망한 나의
무덤, 침 한번 더 뱉고
다시 보지 말아져라.


- 신동엽 시 ‘서시(序詩)‘모두
, 『꽃같이 그대 쓰러진』, 실천문학사, 1988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모두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혼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지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모두
*시집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창작과비평사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 신동엽 시 ‘봄은’
<한국일보, 1968년 2월 4일>



나돌아가는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터
새순 돋듯

허구 많은 자연 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 신동엽 시 ‘너 에게’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시 ‘산에 언덕에‘모두
<아사녀(阿謝女), 문학사, 1963>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허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言語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하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 신동엽 시 ‘좋은 언어‘
<사상계> 1970년 4월호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사월(四月)이 오면
산천(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사월(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祖國)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사월(四月)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東學)의 함성,
광화문(光化門)서 목 터진 사월(四月)의 승리(勝利)여.

강산(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享樂)의 불야성(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四月)은 일어서는 달.


- 신동엽 시 ‘4월은 갈아엎는 달‘
* 1966년 4월, 조선일보 발표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마루
투명한 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陵線)위
바람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마시며
차마, 옷입은 도시계집 사랑했을리야


- 신동엽 시 ‘아니오' 전문 <시집 阿斯女, 1963년>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 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신동엽 시 ‘그 사람에게‘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 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퍼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신동엽 시‘담배 연기처럼‘모두




너는 모르리라
그날 내 왜
넋나간 사람처럼 고가(古家) 앞
서 있었던가를

너는 모르리라
진달래 피면 내 영혼 속에
미치는 두 마리
짐승의 울음

너는 모르리라
산을 열 굽이 넘고도
소경처럼 너만을 구심(求心)하는
해와 동굴(洞窟)과 내 사랑

너는 모르리라
문명된 하늘 아래 손넣고 광화문 뒷거리 걸으며
내 왜 역사 없다
벌레 삥......니까렸는가를

하여
넌 무덤 속 가서도 모를 것이다
너 안 보는 자리서
찬 돌 쓸어 안으며
그 숱한 날 얼마나 통곡했는가

그리하여
넌 할미꽃 밑에서도 모를 것이다
그날 왜 내
눈물먹은 네 진주에 손대지
안했는가를.
그리고 그것은 몰라야 쓴다.


- 신동엽 시 ‘너는 모르리라‘



팔월의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바람 부는 가로수,
피난가는 내 소녀는
영어를 알고
있었지.

나뭇게 끄을며
절길 오른
바랑,
산골길 칠백리엔
이마 훔치던
원효선사.

원두막 밑에선 미국 간 아들
편질 읽으며 칠순 할아버지가
사관침 장죽에 쑥을 버무려 넣고
있었지.

패랭이 달린
황토 언덕
제트편대가
강(江)을 울리면
배꼽 내논 아해들은
풀뿌리 씹으며
구경을 하고.

마(馬), 진(辰) 사람네
조개무덤 쌓던
댕댕이 넌출 고을엔
수평 멀리
함성소리만
불 질려 오른다.

꽃신 놓인 토방
놋거울은 닳고,
콩밭 매는 뒤꼍
황진이 숲속선
땅 즐겁게
멍석딸기가
익고
있었다.


- 신동엽 시 ‘여름 이야기’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果樹園)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을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 신동엽 시 ‘진달래 산천(山川) ‘모두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가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고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 신동엽 시 ‘종로5가’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북함 가득 담고 오너라

참새처럼 깡똥한, 날매
가슴차게 안겨 오너라

경이여

장미처럼 매선 향기
가시로 쏘아라

화염한 눈웃음은
다음 장으로


- 신동엽 시 ‘사랑’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 누
리 보일 거에요. 잡답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
에요. 하늘 푸르러도 넌출 뿌리 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예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
날 홍수 쓸려 죄없는 백성들은 발버둥쳐 갔어요.높아
만 보세요. 온 역사 보일 거에요.이 빠진 고목 몇 그
루 거미집 쳐 있을 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예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보세요.쏟아지는 햇빛 검깊
은 하늘밭 부딪칠 거예요. 하면 영 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싹수 좋은 둥구나무 새끼들을 발견할 거예요.힘이 있
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이슬 열린 아직 새
벽 벌판이예요.


- 신 동 엽 시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비평사, 1989 개정판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 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 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


- 신동엽 시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모두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 신동엽 시 ‘봄의 소식(消息)‘





** 신동엽(申東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호는 석림(石林)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김수영(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30년 ~ 1969년 국어교사,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 작품과 더불어 민중의 정서에 따른 시적 형상을 창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1960년대에 김수영의 시와 더불어 참여시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껍데기는 가라>, <금강(錦江)>,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이 있다.


신동엽 문학관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12 (동남리 501-21), 신동엽 생가 뒷편에 있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전시관은 문학마당, 안마당, 옥상마당으로 만들어져 있고, 부여출신 화가 임옥상의 작품인 시인의 대표시 구절이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는 야외마당은 1985년 재건축 복원된 시인 생가 뒷마당과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