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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 쓸쓸한 영혼

씨알의 시/김 수영 시.

바람에 따라, 춤춘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 수영 시 ‘풀’ 모두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 수영 시 ‘눈’모두




어둠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 수영 시 ‘사랑’모두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



- 김 수영 시 ‘고궁을 나오면서’모두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 수영 시 ‘푸른 하늘은’모두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뿐이다 그리고
深夜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闊步하고 나선다고 이런 奇異한 慣習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天下를 호령한 閔妃는 한 번도 장안 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隱密도 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으로 가라 東洋拓植會社,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아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ㅡㅡㅡ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 수영 사 ‘巨大한 뿌리’모두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김 수영 시 ‘폭포’모두



** 한창,, 예민하던 시절에 *함 석헌, *김 지하, *김 수영,, 이런 시인들의 글은 70년대 말과 80년대 시대의 암울함과 밑바닥에 깔려있는 어떤 저항감에 맞물려 답답하고 힘들었던 생활속에서 청량감을 주었다. 몸과 정신을 속박하려 드는 세상에서 그래도 ‘자유로운 혼‘들을 깨닳게 해 주는,, 그들의  굽히지 않는 정신과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

경제적으로, 답답하고 어려워지는 시대에 그들의 글과 시는, 다시 읽어 보아도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하다. “ 생각하는 씨알 이어야 살 수 있다” 하시던 함석헌 옹 의 말씀도…, 4월을 지나서 5월을 보면서, 4.19 와 5월의 광주가 아프게 떠 오른다. 이제는 잊혀진 친구들도,,





* 함석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언론인, 민중운동가, 사상가, 문필가. 노년에 더 열심히 활동했기 때문에 '겨레의 할아버지'란 호칭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척 보기 드문 퀘이커 신자였다.
출생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미라면 원성동 (현 평안북도 염주군 다사노동자구)
직업
사회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출판인
종교
개신교 ( 퀘이커 )
사망
1989년 2월 4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김 지하

시인이자 생명운동가.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이다.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 등을 받았다.
출생-사망 1941.2.4 ~ 2022.5.8
본명 김영일
별칭 필명 형(灐), 반체제 저항시인
국적 한국
활동분야 문학(시)
출생지 전남 목포
주요수상 로터스상(1975), 세계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1981), 정지용문학상(2002)
주요저서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별밭을 우러르며》 《이 가문 날의 비구름》, 산문집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옹치격》 《동학이야기》 《생명》 《대설, 남》


* 김 수영

출생
1921. 11. 27. 서울특별시
사망
1968. 6. 16.
데뷔
1945년 시 '묘정의 노래'
정보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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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항
~1946
연희전문학교 영어영문학 중퇴
1941
도쿄대학 중퇴
~1941
선린상업고등학교
어의동공립보통학교
수상내역
2001
금관문화훈장
1999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세기를 빛낸 한국의예술인
1958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경력사항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선린상업고등학교 영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