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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백석의 시.


좋아하는 백석 의 詩 한편.
조회(228)
이미지..,love. | 2006/04/20 (목)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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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녘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히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시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전문
 
 
 
 
더 나누는 백석 詩 두편,,,
조회(265)
이미지..,love. | 2006/04/22 (토)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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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녘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묵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메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 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 끓여놓고 저녘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끼고 저녘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컥하는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위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맹'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백석 詩 '흰 바람벽 이 있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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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좋아하는 백석의 시 몇편을 꼽아보라 하여 두편 밖에 안된다고 하였지만 하나하나 꼽아보니 5편 정도가 된다. 어느 벗은 백석의 용모가 미남이라서 좋아한다고 하여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백 기행(본명)씨가 지하에서 들으면 좋아할 듯 싶다. 친구에게 농담으로 같은 백씨성을 씀으로(밝히자면 본래 白씨성을 쓴다)좋아한다 했으나 실은 젊은날의 삶에서 '감정'이 통했던 것이다. 백석의 시중에 순백의 이미지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빼 놓을수는 없다.   ^^*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장편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지만 북국의 소녀의 보통명사라는 이미지가 더 짙다. 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이나, 윤동주 시인이 다같이 좋아하던 이미지 였다. 후에 김자야 라는 익명의 여성이 나타나 "내 사랑 백석"이라는 에세이를 내놓아 '나타샤'라는 익명의 여인이 실제로 존재했던 로맨스란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아, 어려움 속에도 사랑은 이처럼 아름다운 詩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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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알응알 울을 것이다
 
 
  -백석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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