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수염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개를 들고,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자.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빰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는, 생전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어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유희경 시 '내일, 내일' 모두 * .. 더보기 삶이,, 시시하다. 시시할 것 아주 시시할 것 내 소원 선사 구석기 말 어느날 구름도 좀 있었겠지 그런 날 한 뜨내기 사내로든 한 뜨내기 사내 떠나보낸 한 계집으로든 나 죽고 싶어 그리 죽고 싶어 가을이건 겨울이건 이듬해 유들지는 봄이건 언제건 죽을지도 모르게 나 죽고 싶어 가령 조릿대 푸나무서리에 툭 떨어져 있는 철새 주검 그 옆 언어 이전의 느린 의성어 의태어 잠든 달밤 그쯤 - 고은 시 '나의 소원' 모두 * 세월을 정리 하는 것도 아닌데,, 때 마다 버려야 하는 책들이 많기도 하다. 이리저리 필요할 것이라고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던 잡지들을 몇박스씩 싸서 버리면서,, 결국에는 필요 보다는 욕심이 앞섰음을 깨닿는다. 후에 다시 보리라는 기대는 이제는 장담하지 말자. 세상은 내 속도 보다도 빠르게 변하고 지식은 더욱 빠.. 더보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님 댁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석달 만에 고향집에 들어서자마자 통곡을 하셨다 안방에 들어가더니 찬 방바닥을 만지며 꺼이 꺼이 우셨다 가만히 문을 닫아드렸다 모두들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한동안 안마당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려 하자 손사래를 치며 더 우시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굶주렸던 집이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달게 범하고 있었다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어머니가 발그레한 얼굴로 안방에서 나오셨다. - 고영민 시 '통정' 모두 * 세상을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이 수도 없이, 때도 없이 발생한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이 아프고 마음에 오래 남는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인데,, 그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일 경우에야 무어라 말을 할까?!.. 더보기 뜨거운 커피를 내려 놓고,, 원두를 넣고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기다려 커피 한 잔을 받아와 창가에 앉았다 꽃나무들이 물을 부어 꽃을 내린다 한 철 허공에 필터를 받쳐놓고 꽃차를 우려낸다 몇 차례 뜨거운 비가 꽃가지 사이를 왔다 갔나 올봄 당신은 저 나무에게서 몇 잔의 뜨겁고 진한 꽃차를 얻어 마셨나 어제는 먼지 이는 꽃나무 밑으로 외국인 노동자 몇명이 흰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지나갔다 걸으면서 자꾸 자꾸 자꾸 입맞춤을 하던 달콤한 연인이 지나갔다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전동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여자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중년의 여자가 큰 개를 끌며, 끌려가며 지나갔다. - 고 영민 시 '원두' 모두 *생각이 모아지지 않아, 도망치듯 4박 5일의 일정으로 길을 떠났었다. 일을 마치고 19;55분 제주.. 더보기 소망합니다. 열에서 하나를 덜거나 여덞에 하나를 더한 수 아홉, 수 만약 불리한 아홉가지의 매력과 한 가지 유리한 재앙이 있다면 무엇을 덜거나 무엇을 더해야 할까, 죽음이 여기서의 끝이고 저기로의 이동이라면 닿아 있는 시간과 닿아야 할 곳의 시차를 환산할 수 있을까 시차를 두고 사라진 음악가들 아홉 편의 교향곡을 작곡한 첫 작품에 0번을 매겼어도 소용없었다는 아홉, 수 다가오는 절기를 열면 나무에 아홉 프랙탈의 눈송이 눈송이에 아홉 소올 파트의 호흡 호흡에 아홉 뭉치의 안개 안개에 아홉 마리의 새 새에게 아홉 채도의 깃털 깃털에게 아홉 지명의 바람 바람에게 아홉 가지 기분 그리고 한 점. -이은규 시 '아홉가지 기분'모두 * 그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위의 어른들의 부고와 갑작스런 친우들의 몸바꿈에 그저 멍하니 서.. 더보기 산. 산. 조. 각. 으로,,,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끓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 정호승 시 '스테인드글라스' 모두 * 매년,, 12월이 되면 조금은 겸허한 마음이 된다. 한해를 열심히 살았고, 이제 나에게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해를 또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하고 살수 있으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항상 아쉽다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나이를 더 할수록 아쉬움이 크겠지만 삶에 있어서 잠시지만 자신의 삶에 반성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나를 계획할수 있으니 감사하다. 사람 사는일이 서로가 만나고 헤어.. 더보기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당신은 홍차에 레몬 한 조각을 넣고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쌉싸름한 맛을 좋아했지 단순히 그 차이뿐 늦은 삼월생인 봄의 언저리에서 꽃들이 작년의 날짜들을 계산하고 있을 때 당시은 이제 막 봄눈을 뜬 겨울잠쥐에 대해 말했고 나는 인도에서 겨울을 나는 흰꼬리딱새를 이야기했지 인도에서는 새들이 흰디어로 지저귄다고 쿠시 쿠시 쿠시 하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의 시간 같은 것은 없었지 다만, 늦눈에 움마다 뺨이 언 꽃나무 아래서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당신은 둘이서 바닷가로 산책을 갔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던 날 우리 이마를 따라다니던 비를 이야기하고 나는 까비 쿠시 까비 감이라는 인도 영화에 대해 말했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망각의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언젠가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새들이 .. 더보기 자식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네 눈빛 어두운 내 안의 우물을 비추고 네 손길 스치는 것마다 향기로운 구절초를 드리우고 네 입술 내 뺨에 닿으면 와인 마시듯 조용히 취해간다 네 목소리 내 살아온 세월 뒤흔들고 생생한 기운 퍼뜨릴 때 고향집 담장 위를 달리던 푸른 도마뱀이 어른거리고 달큰한 사과 냄새, 앞마당 흰 백합, 소금처럼 흩날리는 흰 아카시아 꽃잎 눈이 멀도록 아름다워 아아아, 소리치며 아무 걱정없던 추억의 시간이 돌아와 메아리친다. - 신현림 시 '슬프고 외로우면 말해, 내가 웃겨줄게' 모두 * 어린아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짓는다. 웃을 일이 적은 세상에 나를 유일하게 무장해제 시키는,, 아이들과 통하지 않는 몇마디의 대화와 옹알거림은 세상적인 나를 잠시 잊게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보기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