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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날자, 자유롭게 날자구나! 멀리 보이는 흰 바위섬, 가마우찌떼가 겨울을 나는 섬이라 한다 가까이 가보니 새들의 분뇨로 뒤덮여 있다 수많은 바위섬을 두고 그 바위에만 날아와 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마우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사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포식자들의 눈과 발톱을 피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떼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바위를 희게 만들었다 절벽 위에서 서로를 견디며 분뇨 위에서 뒹굴고 싸우고 구애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지상의 집들 또한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지 않은가 가파른 절벽 위에 뒤엉킨 채 말라붙은 기억, 화석처럼 찍힌 발톱자국, 일렁이는 파도에도 씻기지 않는 그 상처를 덮으려 다시 돌아올 가마우찌떼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힘은 파도 위의 북극성처럼 빛나는 저 분뇨자국이다. - 나희.. 더보기
가슴에 묻는다. 한다.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다. 온다. 온 다. 온다. 소리난다. 울린다. 엎드린다. 연락한다. 포위 한다. 좁힌다. 맞힌다. 맞는다. 맞힌다. 흘린다. 흐른 다. 뚫린다. 넘어진다. 부러진다. 날아간다. 거꾸러진 다. 패인다. 이그러진다. 떨려나간다. 뻗는다. 벌린다. 나가떨어진다. 떤다. 찢어진다. 갈라진다. 뽀개진다. 잘 린다. 튄다. 튀어나가 붙는다. 금간다. 벌어진다. 깨진 다. 부서진다. 무너진다. 붙든다. 깔린다. 긴다. 기어나 간다. 붙들린다. 손 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 아, 이제 다가는구나. 어느 황토 구덕에 잠들까. 눈감 는다. 눈뜬다. 살아 있다. 있다. 있다. 있다. 살아 있 다. 산다. - 황지우 시 '動詞' 모두 詩集,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 더보기
꽃을 든 女人에게,,, 내가 지도교수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커피 솝 왈츠의 큰 통유리문 저쪽에서 당신이 빛을 등에 지고서 천천히 印畵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세계에 당신이 처음으로 나타난 거였다. 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지만, 암스테르담은 어떤 이에겐 소원을 뜻한다. 구청 직원이 서류를 들고 北歐風 건물을 지나간 것이나 가로수 그림자가 그물 친 담벼락, 그 푸른 投網 밑으로 당신이 지나갔던 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 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처럼, 당신이 지나간 뒤 물살을 만드는 어떤 그물에 걸려 나는 한참 동안 당신을 따라가다 왔다. 세계에 다른 시간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느 축선에서 만난다 믿고 나는 돌아왔던 거다. 지도교수는 마그리트의 파이프에 다.. 더보기
다시 함박눈이 내리면....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줄은 없었다. 그 이후론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 더보기
안쪽과 바깥쪽.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남대문 쪽으로 내려다본 매연이 아름답다. 중세의 문은 霧笛을 우는 배처럼 떠 있고 클랙슨 음색의 희끄무레한 대기; 훅 불면 사라질, 먼지들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도큐 호텔, 市警, 피부비뇨기과, 정류장, 가로수들; 훅 불면 사라질 먼지 인간들이 시장에서 나온다. 나는 남대문 부근의, 낮에 나온 별자리를 보며 城을 찾아간다. 쿠스코에서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도중에서 쓴 그녀의 편지는 내 호주머니 속에 아직 있다. 나는 그걸 읽지도 않았다. 그렇다, 저 남쪽에는 나의 정원이 있다. 석양을 되받아 그 일대를 鍍金시키고 있는 연못; 나를 집어삼킨, 나의 필사적인 요양원. 나는 왜 그곳을 버리고 다시 떠나왔는가? 이미 성문은 닫혀 있고, 어쩌면 유토피아는 우리가 뒤에 두고 지나쳐왔는지도 모른다... 더보기
가을.. 벌판에 서서 계절의 공명을 느끼며,,, 산의 구름다리를 오를 때마다 바하의 샤콘느를 듣는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구름다리의 몸을 긋고 가는 현의 무게로 휘청거린다 바람의 활이 휘청거리는 구름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굵게 훓고 지나간다 줄이 끝에서 보이지 않게 떨리는 生 닿아야 할 정상은 비구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두칸씩 건너 뛰어 본다 위험하다 무반주로 두 개의 현을 동시에 켜는 일은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오히려, 소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두려움 소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무게중심을 잡지 못해 구름다리가 삐꺽거렸다 지금처럼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인 날 가끔 외길이란 것을 잊고 발을 마구 헛딛을 때 구름다리는 세차게 몸을 흔든다 구름다리 주변의 비구름 안개가 같이 뒤엉켰다 발판이 떨어져나가고 줄이 투두둑 끊기는 소리를 냈다 뒤집힐지.. 더보기
새들도,, 떠나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모두 1987) 비가 그리도,, 쏳아 붓더니, 가을이 왔다. 이 가을도 "가을 이구나!" 하고 느낄 즈음에는 싸늘하고 가슴을 저미는 칼바람이 불어대는 겨울이 또 성큼, 우리곁에 와 있을 .. 더보기
가만히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으로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 본다. - 황지우 시 '출가하는 새' 모두 - 참 이상한 일이다. 7월과 8월 그리고 9월,, 연속적으로 잡다한 일들이 시간을 빼앗는다. 일을 진행하고 삶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원칙'은 변하지 않겠지만,, 방법론에서 수없이 수정을 하고 고치며 '나만의 길'을 칮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