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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산다'고 하는 것. 그 사람이 라디오를 켜는 시간이야 물 잔의 물까지 어는 추운 겨울밤 그 사람은 라디오를 켜지, 당신이 사는 도시보다 한 시간 삼십 분쯤 먼저 저녁이 일찍 찾아오는 산골마을 산 번지 저녁이 오기 전에 저녁밥 지어 먹고 저녁이 오면 이내 깜깜해지는 겨울밤에 불이 꺼져 무덤처럼 춥고 어두웠던 집에 라디오가 알불처럼 켜지는 거야, 빈방에 소리들이 두런두런하며 스스로 따뜻해졌어 여름 이후 그 사람은 입을 닫아버렸어 사람의 소리를 잃어버린 그 사람의 방은 무덤 속 같았지,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방 적막이 먼지로 수북수북 쌓이는 방 그 사람이 다락방에서 작은 라디오 하나 챙겨왔어 라디오가 처음 켜지는 날, 그때 알았지 아, 소리라는 것이 알전구처럼 밝고 소리라는 것이 손난로처럼 따뜻하구나 그 사람은 어린 시절의.. 더보기
안녕? 안녕! 안녕,,, 걸음 뗄 때마다 오른편 발뒤꿈치 아프게 땅기는 족저근막염에 걸려 침을 아홉 번 맞아도 통증 기울지 않고 복수초가 피었다 졌을 지금쯤 개나리 한창일 더보기
왼쪽을 위한 아리아.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애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 이수명 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모두 * '시간은 흐르는 물 같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고 있다. 시간을 재며 달려가는 세월속.. 더보기
하늘을.... 본다! 노르웨이에서 온 남자가 노르웨이로 간 여자를 생각한다 노르웨이 이곳이 바로 노르웨인데 가방들이 얼음처럼 무거워진다 노르웨이의 새들은 물 위에서 잠을 잔다 조류에 밀려 부딪치면 그들은 부부가 되거나 북해의 끝과 끝으로 날아간다 날아가서 다시는 날지 않는다 노르웨이에서 온 남자도 노르웨이에서 온 여자도 노르웨이의 그림자들도 노르웨이로 간 사람을 생각한다 노르웨이를 생각한다 생각한다. - 김이강 시 ' 노르웨이,노르웨이' 모두 * 이별은 시시하다. 눈물이나 마음의 상처 따위는 이제는 그만, 그 사람과 더블어 떠나 보냈다. 낯선 지명의 도시로 떠나보낸 그 사람도 이제는 이름도 낯설게 느껴진다. 먼훗날 그 사람을 어찌 만난다면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담담하게 지나칠 수 있을것 같다. 세월이란, 사람을 사랑한다는 .. 더보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몹시 분다 이름도 모르는 벌판에서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았다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들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반짝반짝 글썽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무는 생각하는 법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책 앞에서 턱을 괸다 위층 어딘가에서 웅얼웅얼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익숙해질거야 살아서 잠드는 일에 대해 살아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이름도 모르는 벌판의 낯선 태양과 살아서 마주치는 일에 대해 바람이 몹시 분다 바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아온 것처럼 눈동자들은 벌판의 끝으로 굴러가 있고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반짝반짝 글썽인다. - 황성희 시 '나무를 모르는 나무' 모두 * 한살, .. 더보기
木鷄.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의수를 외투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공범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황지우시 '손을 씻는다' 모두 * 자신과 타인에게 당당하기가 쉽지않은 세상이다. 세상을 사는 일은 절반이상이 '선택'이고, 나머지 절반이 상대에 대한 이해나 설득이다. 상대방과 같이가기 위해서는 유용한 결과를 제공할 유무형의 조건을 제시하되, 상대에게 강요나 논리로 승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동의해야 한다는데에 열쇠가 있다. 나이를 더할수록 사람을.. 더보기
In the morning. 어느 벽보판 앞 현상수배범 전단지 사진 속에 내 얼굴이 있었다 안경을 끼고 입꼬리가 축 처진 게 영락없이 내 얼굴이었다 내가 무슨 대죄를 지어 나도 모르게 수배되고 있는지 몰라 벽보판 앞을 평생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알았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늙어버린 죄. - 정호승 시 '어느 벽보판 앞에서' 모두 * 아침부터, 밤을 새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새벽에 깨어나 간단히 세안을 하고 냉수를 한컵 가득 마십니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시원함에 미처 깨어나지 못한 세포 들이 하나, 둘 소스라쳐 깨어나는 듯한 상쾌함 입니다. 첫차를 타고 비와 더블어 출근을 합니다. 지하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면서 음악의 볼륨을 조금 낮추어 봅니다. 내리는 비소리가 더 정겹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타자마자 자.. 더보기
라 말라게니아. 그칠 줄 모르고 노래하던 조그만 남자가 내 머리 속에서 춤추던 조그만 남자가 청춘의 조그만 남자가 그의 구두끈을 끊어 버렸다 갑자기 축제의 오두막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축제의 침묵 속에서 축제의 황폐 속에서 나는 네 행복한 목소리를 들었다 찟어지고 꺼져버릴 듯한 네 목소리를 멀리서 다가와 날 부르는 네 목소리를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으니 피처럼 붉게 흔들리는 것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네 웃음의 일곱조각난 거울. - 쟈끄 프로베르 시 '깨어진 거울' 모두 *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어쩌지 못하고 바라 보아야 하는 것은 이를 악무는 고통이다. 집착을 버리고 자유롭게 사랑한다. 살고자 하는 그 생명력에 대한 이해이다. 살면서 '청춘'이라 이름할 수 있는 삶의 순간들,, 어찌 생각하면 삶의 은혜와 같은, 일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