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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방랑의 시 - 이 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이 병률 시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 문학과지성사, 2024. 감 하나 서리한 날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덜컹하는 바람에 서리한 감이 앞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어느 정도는 뒷자리여서 또 .. 더보기
오월, 햇빛 찬란한 길을 걸어 나가며, 월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시대와 시를 생각하며, 나는 걷는다. 법망이 뒤얽힌 거리를 빠져 나가며 마주치는 모든 눈동자 속에서 공포에 질린 피의자를 만난다. 신경을 감춘 모든 건물과 담 밑에서 만난 사람들이 웬일로 말없이 눈시울을 붉히고 등뒤에서 번득이는 보안등, 불빛이 이룬 가장 깊은 그늘을 본다. 사람들이 황망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문마다 빗장을 거는 소리, 집집마다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어둡고 비탄에 잠긴 한숨과 모든 침묵 속에서 나는 한시대가 이룩한 가장 두렵고 아픈 소리를 듣는다 월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시대와 세계의 다른 도시들을 생각하며 보고 듣고 그리고 나는 걷는다. -정희성시 '길을 걸으며'전문 * William Blake: 삽화의 발전에 기여한 18~19세기 영국의 시인, 화가, 판화가로 .. 더보기
1980. 5.18. 광주.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 정희성 시 ‘ 이곳에 살기 위하여‘ * 1980.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44년이 흘렀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수없이 피고 진, 젊음들이 있었다. 80년대의 ‘암담함’을 어찌 표현 할까?!.., 과외금지에, 휴교령에 사복경찰이 수시로 교내를 드나들었고 과의 한 친구는 ‘프락치.. 더보기
두손을 모아 허리숙여 합장합니다! 저렇게 산이 가파르다간 하는데 상쾌한 물소리 들린다 도계가 가까운 마을들 근신하듯이 밤길 홀로 걸어, 실상사(實相寺) 다리를 건넌다 예부터 실상인가 별들은 지독한 피부병처럼 잔뜩 성나 있고 천왕봉 날망은 잘 버려져 있다 지리산은 지금 지이산(智異山) 밤에 우는 새소리는 띄엄띄엄 뼛속으로 깃들어 참회가 모자라는 한 생애를 잠 못 들게 한다 근신하라 근신하라고 한다 돌아온 길이며 건너온 물길들 하며 또, 한 방울 눈물에도 젖어드는 허물들하고, 그 순간 한 발짝을 못 내밀게 하던 미안함들이 여기까지 따라와 있다 지이산 한 자락, 생애의 지리에 너무 어두워, 실상을 찾지 못해 하룻밤 눕는데, 문밖에서 누가 오늘 앞산은 허, 지이산이구나 하고 간다 이 근신은 언제 해맑아져 그대 앞에서 떳떳해질 것인가 지리(地理).. 더보기
道化師のソネット(어릿 광대의 소네트), 佐田雅志(사다 마사시)곡 - 歌心りえ(우타고코로 리에) 笑ってよ君のために 웃어줘요 당신을 위해서 笑ってよ僕のために 웃어줘요 나를 위해서 僕達は小さな舟に 哀しみという荷物を積んで 우리는 작은 배에 슬픔이라는 짐을 싣고 時の流れを下ってゆく 舟人たちのようだね 시간의 흐름을 타고가는 뱃사람 같아요 君のその小さな手には 持ちきれない程の哀しみを 당신의 그 작은 손에 다 담기지도 못할 슬픔을 せめて笑顔が救うのなら 僕は道化師になれるよ 작은 웃음이 덜어줄 수만 있다면 나는 피에로가 될 수 있어요 笑ってよ君のために 웃어줘요 당신을 위해서 笑ってよ僕のために 웃어줘요 나를 위해서 きっと誰もが 同じ河のほとりを歩いている 분명 누군가가 같은 강가를 걷고 있을거예요 僕らは別々の山を それぞれの高さ目指して 우리는 서로 다른 산을 각각 다른 높이를 바라보며 息もつがずに登ってゆく 山びと達のようだね.. 더보기
‘すずめの淚 / 참새의 눈물’ 박혜신, 한일가왕전, (원곡:계 은숙) 世の中であんたが 一番好きだったけれど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좋았지만, 追いかけてすがりつき 泣いてもみじめにあるだけ 쫓아가 매달리며 울어도 비참해질 뿐이야 幸福を窓に閉じこめて 飼いなりしてみても 행복을 창에 가둬 놓고 키워보아도 悲しみが胸のすき間から 忍び こんでくる 슬픔이 가슴의 빈틈으로 숨어들어오네 だかが人生 なりゆきまかせ 이까짓 인생 될 대로 되라지 男なんかは 星の數ほど 남자는 별처럼 많아 泥んこになるまえに 흙투성이가 되기 전에 綺麗にあばよ 깨끗이 안녕 好きでいるうちに 許してあばよ 아직 좋아하고 있을 때 용서하며 안녕 もし 今度生れてくるなら 孔雀よりすずめ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공작보단 참새이고 싶어 口紅も香水もつけないで 誰かと暮すわ 립스틱도 향수도 바르지 않고, 누군가와 살래 色ついた夢を見るよりも 화려한.. 더보기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사월 초파일 傳燈寺에서 淨水寺까지 공양드리러 가는 보살님 차를 얻어 탔다 토마토 가지 호박 늦은 모종을 안고 십 리를 더 걸어와 흙 파고 물 붓고 뿌리에 마지막 햇살 넣고 흙 덮고 해도 燈처럼 물(水)처럼 날이 맑아 개밥그릇을 말갛게 닦아주고 싶었다 부처님 오신 날인데 나도 수돗가에 앉아 도(陶)를 닦았다 고개 갸웃갸웃 쳐다보던 흰 개 없다니까! 그 그림자가 그릇의 맛이야 수백 번 혓바닥으로 핥아도 아직 지울 수 햇살이 담길수록 그릇이 가벼웠다 - 함 민복 시 ‘개밥그릇‘ * 시집 : 말랑말랑한 힘 - 오래전에, 사월 초파일 ’ 부처님 오신 날‘에 결혼식을 했다. 당시에 난 기독교를 믿었고 교회 고등부 고3 교사였고, 아내의 집안은 불교도 집안이었다. 종교적 갈등 없이 서로의 종교에 ’ 진실‘하다는 이유.. 더보기
’가볍고 맑게‘ - 詩詩하게 살자, 정 현종 시. 하루를 공친다 한 여자 때문에. 하루를 공친다 술 때문에.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 정신이라는 과일이 있다. 몸이라는 과일이 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두엄이고 햇빛이고 바람이거니와 바람 없는 날은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대지여 여자는 바람인가 술은 햇빛인가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하늘이다 바람이 시작하는 그곳이여. - 정 현종 시 ’바람이 시작하는 곳‘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