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가족사진’ 속에 내 모습. 아들이 군대에 가고 대학생이 된 딸아이마저 서울로 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했다 아는 사진관을 찾아가서 두 아이는 앉히고 아내도 그 옆자리에 앉히고 나는 뒤에 서서 가족사진이란 걸 찍었다 미장원에 다녀오고 무쓰도 발라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어보았지만 그만 찡그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떫은 땡감을 씹은 듯 걸쩍지근한 아내의 얼굴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나의 얼굴 그것은 결혼 25년 만에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세상이었다. - 나 태주 시 ‘가족사진’ * 젊다고 느꼈을 때에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싶었다. 가족을 이루고, 하나하나씩 사람으로 갖추며 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 아버지의, 내 어머니의 길을 닮아가 부모가 되고 불효한 자식이 되었다. .. 더보기 세상의 모든 ‘작은 꽃’들과 더블어 - 나 태주 시인. 풀꽃·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 나 태주 시 ‘풀꽃 1.2.3’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 나 태주 시 ‘화살기도‘ * (지혜, 2015) 멀리서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아 가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좋아 그치만 아이야 너무 가까이 오려고 애쓰지 말아라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까지 높은 날 봄날이라도 눈물 글썽이는 저녁 무렵 나는 여기 .. 더보기 시 속의 시인 - ‘백석' 정기구독 목록 [최갑수] 나의 정기구독 목록에는 늦은 밤 창가를 스치는 빗소리와 그 빗소리를 들으며 슬쩍슬쩍 읽어보는 윤동주 백석 박용래 같은 눈물을 닮은 이름 몇 자들 새벽녘 앞마당에 고여 있는 막 떠다놓은 찻물처럼 말갛기만 한 하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바람난 애인이 또박또박 적어준 빛이 바랜 하늘색 편지 읍내에서 단 하나뿐인 중앙극장의 야릇하게 생긴 배우들 그 배우들이 슬픈 얼굴로 보여주는 화끈한 '오늘 푸로' 환절기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나흘간의 감기 그때마다 먹는 빨갛고 노란 알약들, 일요일 담에 널어 말리는 초록색 담요와 그 담요를 말고 자는 둥그스름한 낮잠 그 낮잠 위로 헬리콥터가 한 대 가끔 부르르르 저공 비행을 하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내 낮잠도 부르르르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낮잠에서 .. 더보기 젓어서 흐느끼는 창문을 보다가..,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김 소월 시 ‘왕십리’모두 *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빗줄기와 강풍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들,, 젓어서 흐느끼듯 흘러내리는 거실의 창을 바라보다가 문득, 느끼는 에어컨의 한기에 긴팔 옷을 꺼내 입는다. 여기저기에서 전해오는 비소식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문득 틀어 놓은 오디오에서는 박강수 가 여진의 ‘꿈속에서’를 부르고 있다. 여름휴가가 시적 되었다. .. 더보기 죽음보다 깊은 잠. 나를 치유해 준 것은 언제나 너였다 상처만이 장신구인 생으로부터 엉컹퀴 사랑으로부터 신이 내린 처방은 너였다 옆으로 돌아누운 너에게 눌린 내 귀, 세상의 소음을 잊고 두개의 눈꺼풀에 입 맞춰 망각의 눈동자를 봉인하는 너, 잠이여 나는 다시 밤으로 돌아와 있다 밤에서 밤으로 부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시간으로 얼굴의 윤곽을 소멸 시키는 어둠 속으로 나라고 하는 타인은 불안한 예각을 가지고 있다 잠이 얕은 혼을 내가 숨을 곳은 언제나 너 였다 가장 큰 형벌은 너 없이 지새는 밤 네가 베개를 뺄 때 나는 아직도 네가 깨어있는 이곳이 낯설다 때로는 다음 생에 눈뜨게도 하는 너, 잠이여 -류 시화 시 ‘ 잠’ 모두 * 병원에서 돌아와 밀려오는 근육통에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를 가볍게 하고, 진통제에 수면제 한알을 더.. 더보기 재물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느냐?! 재물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느냐 만 냥 빚을 얻어 과일과 말총 장사로 수천 빈민을 구제했던 허생은 오십만 냥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다시 초가집 선비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혀를 찬다 아까와라 허생의 꿈은 돈이 아니었다 너희는 어떠냐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외친다 돈! 혹시 도는 없느냐 한두 아이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주책스런 질문을 했구나 감히 무엇을 돈에 비길 것인가 선비가 말총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도는 이미 찌그러진 갓이 되었다 도는 돈을 살찌우지 못하므로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라님도 도를 권하지 않는다 가정도 학교도 국가도 시장이 된 세상 맹렬히 돈을 꿈꾸는 것이 가장 옳은 도다 아이들의 돈의 도를 위하여 밑줄 긋고 별표 치며 허생전을 읽는다 허생은 찌그러진 갓을 쓰고 휘적휘적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다.. 더보기 시 속의 시인 - ‘김종삼' 김종삼 전집 [장석주] ―주역시편ˇ22 정처없는 마음에 가하는 다정한 폭력이다. 춤추는 소녀들의 발목, 혀 없이 노래하는 빗방울, 날개 없이 날려는 습관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정표, 또다시 봄이 오면 누가 봄을 등 뒤에 달고 벙거지를 쓰고 허청허청 걸어간다. 그가 누구인지를 잘 안다. 오리나무에서 우는 가슴이 붉은 새여, 오리나무는 울지 않고 바보들이 머리를 어깨에 얹은 채 지나가고 4월 상순의 날들이 간다. 밥때에 밥알을 천천히 씹으며 끝끝내 슬프지 않다.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오직 기일과 함께 돌아오는 5월의 뱀들. 풀숲마다 뱀은 고요의 형상을 하고 길게 엎드려 있다. 감상적으로 긴 생이다. 배를 미는 길쭉한 생 위로 얼마나 많은 우아한 구름들이 흘러갔는가. 개가 죽은 수요일 오후, 오늘.. 더보기 시 속의 시인 - ‘김수영' 뇌 [서동욱] ―또는 김수영의 마지막 날 대지여, 영예로운 손님을 맞으시라 ―오든 1 술 취한 시인은 이번에도 이길 것 같았다 " 너는 왜 이런, 신문 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 인격에 싸가지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그는 죽은 이에게도 뒤에서 욕을 한다 아니면 빈말 한마디 하는 데도 수전노 같다 "거짓말이라도 칭찬을 쓸 걸 그랬다" 시인은 이번엔 자기 자신을 이길 것 같았다 자신을 칭찬하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이제, 비틀거리며 차도 위로 내려오는구나 ( " 당신한테도 이겨야 하겠다 " ) 이 못된 성질 2 심야 버스가 멈춰 서고 계란찜을 만들려고 사기그릇에 탁 껍데기를 치는 충격 같은 것이 머리를 지나갔으며 남극에 떠 있는 얼음처럼 두 눈 뒤에 둥둥 떠 있던 뇌는 이제야 당황하며 자신이 견..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8 9 ··· 1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