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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의 시인 - ‘김관식' 시인학교 [김종삼]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 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김종삼을 생각하다, 예서, 2021 김관식 [김진경]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나는 그의 시를 변변히 읽은 것도 없어 하지만 그는 엄연히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야 내 젊은 시절 그와 강경상고 동창이라는 큰 형은 나를 만류해보려고 늘 그를 들먹거리곤 했지 보릿고개를 넘는 시골에 시를 씁네 하고 하얀 양복에 백구두.. 더보기
게릴라성 호우 / 김 이듬. 거리의 비는 잠시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는 우산들은 평화로이 떠가는 잠깐의 행성이 된다 곧 어마어마한 욕설이 들려오고 뭔가 또 깨고 부수는 소리 옆집 아저씨는 일주일에 몇 번 미치는 것 같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는 오늘 한마디도 안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서 아아 했지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는 말이 아니니까 홑이불처럼 잠시 사각거리다가 나는 치워질 것이다 직업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파로 모기를 죽였다 더 죽일 게 없나 찾아보았다 호흡을 멈추면서 언제까지나 숨 쉴 수 있다는 듯이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갖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 더보기
현실과 ‘감성’ 사이에서 아주 둥근 현실의 자기 그릇 위에사과 한 알이 놓여 있다사과를 마주 보며현실의 어느 화가가사과를 보이는 그대로그려보려고 헛되이 애쓰고 있지만결코사과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사과는그 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그 자신 속에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사과는그 자리에서 돌고 있다그는 현실의 그릇 위에서남몰래 혼자서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돌고 있다찍고 싶지 않은 그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가로등으로 가장한 기즈 백작처럼사과는 거짓으로 아름답게 꾸민 과일로 가장한다바로 그때현실의 화가는사과가 거짓된 모습으로 그에게 맞서고 있음을깨닫기 시작한다그리고불행한 거지처럼마치 어디든 상관없는 선량하고 자애롭고 무서운 어느 자선단체의 처분에 달려 있음을 갑자기 알게 된 가난한 영세민처럼현실의 그 불행한 화가는그때 갑자기.. 더보기
시를 쓴다는 것 / 조 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 조영혜 시 '시를 쓴다는 것' 모두 * 문득 바하의 무반주첼로 No1. 서주(Prelude)를 듣고 싶어지는 무더운 날. 더보기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언제부턴가 나는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불그림자 멀리멀리얼음짱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내가 너무 쓸쓸하여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더보기
먹고 일하고, 마시고 자는 일상의 생활 - 김 경미 시. 1 누군가 '사하라 작약' 얘기를 했다 19세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름을 딴 '사라 베르나르 작약' 우리나라 화훼 수입상이 '사하라 작약'으로 바꿨다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린 말들이 모여 사하라가 되고 사라 사하라 베르베르 베르나드가 되고 버나드 사라가 되고 사라 작약이 되고 사하라 버나드 사라 카라 3세가 되어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퍼뜨리거나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바꾸거나 떨어뜨리거나 멀어지는 법 말이 없이는 '사라 베르나르 작약'도 애초에 없었다 2 '벨 에포크'를 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살아 있을 때 늘 관(棺)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사막이 되고 작약이 되고 사라가 된 말들이 모여 관(棺)을 짜는 법 매일매일 살아서 거기로 들어가는 아름다움 없이는 어떤 삶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 더보기
마음속 그 ‘오묘’한 사랑법, - 고 정희 시.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기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 고 정희 시 ’ 사랑법 첫째‘ 詩를 쓰듯 설렁대는 말들을 일격에 눕히고 성나는 말과 말 사이를 잘라냅니다. 詩를 쓰듯 보다 많은 생략법과 저녁 어스름 같은 침묵의 공간 안에 한 생애의 여유를 풀어 버리고 두 귀를 쭈뼛히 세워 동서남북으로 뻗은 가지를 자릅니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화냥기를 자르고 자르며 돋아나는 아픔까지 잘라냅니다.. 더보기
수국이 만개(滿開) 했네요. 두 개의 거울이지 커다란 얼굴과 작은 얼굴이 골목의 끝집마다 송아지와 낙타의 혹처럼 서 있지 미래의 조달청이라고 우리는 운을 떼며 조청을 그리워한 것처럼 바다에 들러붙었지 그렇다 치자 밑줄 그은 심장이 바다에 풍덩! 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은 쿠키의 맛처럼 제각각이어서 젖은 하늘빛 린넨 셔츠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육체를 마쳤다 치자의 끝말은 치자리 수국의 끝말은 수구리 짙어진 하늘과 옅어진 등대 사이에서 면과 읍과 리를 그리워한 거지 사라진 희뿌연 낮달은 시계 반대 뱡향으로 보랏빛 비를 뿌렸지 다가오는 달빛은 인간의 뜨거운 손끝에 누런 화상의 자국마저 길가에 버려진 치자꽃의 리, 그렇다 치자 아니라고 치자 수궁은 태양처럼 크고 둥글었지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송 진 시 ‘수국과 치자꽃 ‘ * 시와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