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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숲에 들다

향일암 가는 길/공광규. 바위와 바위가 기댄 암문을 거쳐야 암자에 오를 수 있다 암문은 좁고 좁아서 몸집이 크거나 짐이 많은 사람은 통과 할 수가 없다 꼿꼿한 허리도 굽혀야 하고 머리를 푹 수그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무릎걸음도 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올라가도 바위가 막아서고 사철나무가 막아서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웅전에서 해우소 가는 길도 그렇고 상관음전과 하관음전 가는 길도 그렇고 산신각 가는 길도 그렇다 비가 오면 우산을 접어야 한다 이건 분명 부처님의 기획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바위 문을 통과했다 빗방울이 나를 밟고 활엽수에게 건너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산이 뒤척이며 파도 소리 법음을 내고 있다. - 공광규 시 '향일암 가는 길' 모두 * 삶에 내공이 있는 분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 더보기
외도 / 공광규. 음력 스무날 거제도에 가면 다른 섬 외도에 갈 수 있다 뱃삯은 망치해변에서 담아온 안개 한 가방 거스름 돈은 지세포 바람 한 줌 포말 갑판에 올라 풀잎 등대를 바라보라 녹슨 몸통에 소주를 주유하고 마음의 온도를 일 도 높이면 이내 기관이 가열하여 외도에 닿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리고 외도에 다녀와선 외도를 말하지 말라 달빛안개 안개부두 외도행 여객선은 말하는 순간 이미 사라졌으므로. - 공광규 시 '외도' 모두 * 세상의 가슴 두근거림이나 신비감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모든게 파헤쳐지고 환하게 드러나, 모두가 공유하기를 원하는 세상을 살고있다. 신비감이 사라지니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나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나 흠모의 정 같은 단어도 잊혀져 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인데,, .. 더보기
무조건적 이라는 말?! - 세사 어머이를 이렇게 패는 눔이 어딨너 - 돈 내놔, 나가면 될 거 아냐 연탄재 아무렇게나 버려진 좁은 골목 담벼락에다 아들이 어머니를 자꾸 밀어붙인다 - 차라리 날 잡아먹어라 이눔아 누가 아들을 떼어내다가 연탄재 위에 쓰러뜨렸는데 어머니가 얼른 그 머리를 감싸안았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높다라는 뜻입니다 - 이상국 시 '가난하다는 것은' 모두 * "가난하다는 것이 높다는 뜻" 이라는 시인의 의견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사랑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는것 같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은 잘나고 잘사는 자식보다는 못나고, 못사는 집을 나가 병이든 속을 썩이는, 형편없는 자식을 더 사랑한다. 그것이 부모사랑의 본질이라 믿는다. 부모라는 이름은 특히 모성이라는 이름은 때로 숭고 하기까지 하다. 자식은 부모.. 더보기
아무렇지도 않게,,,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槍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 황지우 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모두 * 제주도에서 부터 지인들이 전해오는 봄꽃 소식은 그렇지 않아도 설레이는 마음을 '환장'하게 한다. 섬진강쪽에도 매화꽃에 이어 목련꽃소식, 조금 더 있으면 벚꽃소식도 들려오겠지, 구레 산수유 마을에도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여 이번 주말에 만개 하리란 지인들의 전통이다. 사람은,, 세상의 일들에도 결국에는 '내세상'을 누리며 산다. 현재의 어떤 처지에도 '새로움'은 눈에 들어오고 또 .. 더보기
황지우 시인. 황지우 시인의 시 모음 [목차]나는 너다 - 126 나는 너다 503. 메아리를 위한 覺書 우울한 편지 비오는 날, 초년(幼年)의 느티나무 상실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動詞 이 세상의 고요 거룩한 저녁 나무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수은등 아래 벚꽃 화광동진(和光同塵) 눈 맞는 대밭에서 길 유혹 나의 누드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THE ROPE OF HOPE 붉은 우체통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타르코프스키 監督의 고향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가을마을과 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인사 세상의 고요 비 그친 새벽 산에서 에프킬라를 뿌리며 눈보라 목마와 딸 아직은 바깥이 있다 게 눈 속의 연꽃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안부 1 안부 2 출가하는 새 비닐새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더보기
눈이 내리면,, 길을 걸어 나아가리라,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 시 '작은 사랑의 노래' 모두 * 매년 겨울이면, 눈이 기다려지면 입속으로 중얼중얼 이시를 외우곤 한다. 내 어린날의 동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눈이 내리면 우산을 펼쳐 머리를 가리고 퇴근길을 걱정하는 늙스레한 중년이 되었다. 올해는 제법 눈이내리는것 처럼 첫눈이 내렸는데, 난 그시간에 야작을 하느라고 눈이 내리는 풍경을 창으로만 보았다. 아침에 길을 나서니 눈은 거짓말처럼.. 더보기
나의 누드 / 황 지우.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제 손으로 제 몸을 구석 구석 훑어 나가는 것은 한두 주일 동안의 때를 밀어내는 일만이 아니다, 一生이여. 이 부피만큼 살아왔구나. 질그릇처럼 아슬아슬하다. 대저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내가 있었던가. 나의 容積이 탕 밖으로 밀어내는 물? 거짓이 나를 만들어 놨을 뿐, 두뇌의 격한 질투심. 열등감. 뭐 드러내기 좋아하는 허영으로 적재된 서른 몇 해. 헐떡거리며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왔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聖者다.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뢰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했구나. 벼락맞은 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요행이.. 더보기
바이올린 풀레이어. 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 마종하 신경성 다발증으로 그녀는 연주를 할 수 없다. 바이올린이 온몸을 파고들어 울리기 때문이다. 홀로 열린 창, 밖에는 늙어 목쉰 고물상. ___여보, 나도 이제 고물이니 사감이 어떠하오? 농담은 날로 진담이 되어서 그녀는 과감하게 고물상에게 몸을 통째로 던지고 말았다. 건드릴 적마다 몸저린 고물상의 기쁨, 해는 그때부터 눈부시고 몸부신 빛이 되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바하의 샤콘느를 들으며 유 수 연 산의 구름다리를 오를 때마다 바하의 샤콘느를 듣는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구름다리의 몸을 긋고 가는 현의 무게로 휘청거린다 바람의 활이 휘청거리는 구름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굵게 훓고 지나간다 줄이 끝에서 보이지 않게 떨리는 生 닿아야 할 정상은 비구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