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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숲에 들다

나의 누드 / 황 지우.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제 손으로 제 몸을 구석 구석
훑어 나가는 것은 한두 주일 동안의 때를 밀어내는
일만이 아니다, 一生이여. 이 부피만큼 살아왔구나.
질그릇처럼 아슬아슬하다. 대저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내가 있었던가. 나의 容積이 탕 밖으로 밀어내는 물?
거짓이 나를 만들어 놨을 뿐,
두뇌의 격한 질투심. 열등감. 뭐 드러내기 좋아하는
허영으로 적재된 서른 몇 해. 헐떡거리며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왔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聖者다.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뢰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했구나.
벼락맞은 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요행이었을 것이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묵묵부답인 소작농이여. 그는
그가 떠나지 못한 新月里 北平의 防風林 아래 윤씨
땅을 새마을 모자 채양으로 재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웃 도암재를 넘어 그는 장독 굽는 陶工이 되려 했으리.
그는 小木이었을까. 말없고 성깔 괴팍한 미쟁이였을까.
아 그는 대처에 나와 그의 바람기로 인해 노가다가 되었으리라.
극장 간판쟁이였거나 공직공장 경비원이었거나 철도 노동자였거나
추운 삶의 시퍼런 정맥을 따라 淸溪川
평화시장까지 흘러갔으리라. 그는 땔나뭇꾼. 껌팔이. 신문팔이.
고물장사였었다. 역 뒤. 極貧의 검은 강가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빈 창자로
서 있었고. 내장에 콸콸 넘치는 쓴 하수도. 뜨거운 내 눈알은
붉은 회충알들이 청천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지러웠다. 현기증 사이로 본 부. 모. 형. 제. 전가족이
각각이 고아였다. 자원입대한 형이 떠난 후
조개석탄을 주우러 침목을 세며 南光州까지 걸어갔었다.
産物을 가득 실은 여수발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最低 生計 以下에 내려와 있는 차단기. 赤信號앞에
서 있던 불우한 날들이여.
風塵 세상 살아오면서 나는 내 삶에, 그러나
그 모든 날들을 不在로 만들어 버렸다. 고백은 지겹다.
모든 자화상이 흉칙하듯. 나는 내가 살던 露天을 복개했다.
캄캄한 여러 지류가 나를 지나갔다.
지나갔었다. 그리고 지나간다.
지금 나는 알몸이다.
내 손이 나를 만진다. 이것이 나다.
때를 벗기면 벗길수록 生涯는 투명하다.
낫자국. 칼자국. 자전거에서 떨어져 무릎팍에 남긴
상처가 내 몸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돌아다보니 몇 바가지 물로 나와 같이
목전의 자기 일생을 씻어내는 알몸들.
알몸들이여. 나의 현장부재중인 '나'들이여.
그러나 등 좀 밀어 달라고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다.
이태리 타월을 들고 나는 한 노인의 등 뒤로 다가갔다.
닿지 않는 나의 등으로.

 

 

- 황지우 시 '나의 누드' 모두

 

 

* 젊은날,,, 사는게 내가 사는게 아닌것 같아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무전여행을 하며 바보같이 살던 날들이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은 끝없이 이어져 줄을 서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새벽같이 학교로 등교하면 교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표정없는 얼굴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학군단길로 돌아서 산길로 학교에 들어가도,, 학생은 없고 프락치와 운동권만이 큰소리치는 캠퍼스는 역겨웠다. 돈 1.000원으로 하루를 사는 청춘들에겐 '막시즘'도 '군부정권타도' 같은 구호도 공허하게 울렸으니,,, 이제 인생의 절반에 뒤돌아보니,, 그래도 후회없이 인생을 살아온것 같다. "시를 산다"는 말, 우리의 삶은 리얼하고 현실이기에 시를 살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2010년 40일도 남지 않아서,, '뜻하지 않은 일'들이 참담히 벌어지는 것을 본다. 남의 눈이나 생각을 이제는 의식하지 말자. '내 본래의 모습'은 외형만이 아니라 내향으로도 가린것을 벗고 떳떳히 스스로를 보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자신'을 내려 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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