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둥근 현실의 자기 그릇 위에
사과 한 알이 놓여 있다
사과를 마주 보며
현실의 어느 화가가
사과를 보이는 그대로
그려보려고 헛되이 애쓰고 있지만
결코
사과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사과는
그 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
그 자신 속에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과는
그 자리에서 돌고 있다
그는 현실의 그릇 위에서
남몰래 혼자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돌고 있다
찍고 싶지 않은 그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가로등으로 가장한 기즈 백작처럼
사과는 거짓으로 아름답게 꾸민 과일로 가장한다
바로 그때
현실의 화가는
사과가 거짓된 모습으로 그에게 맞서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행한 거지처럼
마치 어디든 상관없는 선량하고 자애롭고 무서운 어느 자선단체의
처분에 달려 있음을 갑자기 알게 된 가난한 영세민처럼
현실의 그 불행한 화가는
그때 갑자기 셀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의 덩어리의
가련한 먹이가 되고 만다
돌고 있는 사과는 사과나무를 생각하게 한다
지상의 낙원과 이브와 그리고 또 아담도
물뿌리개와 빠르망띠에 장미와 계단과
캐나다 사과와 에스뻬리뜨 사과와 로네뜨 사과와
능금도
국민의회의 유혹과 사과주스의 신선도
그리고 죄의 기원과
예술의 기원과
월리엄 텔이 살던 스위스와
만유인력 전시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아이작 뉴턴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그러자 어리둥절해진 그 화가는 그의 모델도 잊고
잠이 든다
그때 언제나 여기저기를
자기 집처럼 다니듯이 그곳을 지나가던 피카소가
사과와 그릇과 잠든 화가를 본다
무슨 생각으로 사과를 그리지 하고
피카소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피카소는 그릇을 깨버리고
웃으면서 떠난다
그러자 이를 뽑듯
꿈에서 빠져나온 그 화가는
끝내지 못한 그의 화폭 앞에서
깨어진 자기 그릇 한가운데에서
참담한 현실의 사과씨와 함께 홀로 있음을 깨닫는다.
-쟈끄 프로베르시 '피카소의 산책' 모두
* 내일부터 서울에도 장마의 서주가 시작된다고 한다. 메마르고 세계적으로 폭염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비는 내려야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간의 욕심으로 초래된 기후재앙에 ‘적당히‘라는 말이 사라지고 해마다 장마 때면 비가 쏳아 붓듯이 내리고 있으니,, 우리 시대의 ’ 수해‘와 ’수재민‘을 넘어서서 국가가 ’ 재난‘으로 나서야 하고 수많은 사람이 재산과 생명을 잃는 아픔에 국가적으로 ’ 애도‘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6/19일 제주에서 시작된 장마의 서주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 스럽다. 모쪼록 모두가 긴장하고 국가가 잘 대비해서 ‘인재’로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힘들고 삶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재해’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기원한다. 여러 가지로 삶이 어려운 시대에 반복되는 아픔은 없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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