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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멀고도 가까운 일상의 것들,,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 새가 쪼아 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들이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물었을 뿐인데. - 나희덕 시 '야생사과' 모두 - 어제는 그리도 바람이 불어대더니,, 아침부터 잔뜩, 하늘이 흐르고 바람도 없이 잔잔하더니 비가 내린다. 비가 내려도 날씨는 어제보다 습도.. 더보기
훠~ 어 이, 훠~~워~어. 장사익의 '찔래꽃'이나 이애주의 '부용산'이나 그런 노래 듣고 있을 때 일천 개의 가을 산이 다가오다가 일천 개의 가을 산이 무너지더라도 13월의 태양처럼 세상을 한번 산 위로 들었다가 놓는 마음 노래가 뭐냐? 마음이 세상에 나오면 노래가 된다는 장사익의 말...... 그래서 아리랑이 나왔지, 하얀 꽃 찔레꽃 찔러 찔려가면서 그래서 나왔지, 찔리다 못해 그만 둥그래진 아리랑이 둥그래진, 멍그래진, 찔렸지 울었지 그래 목 놓아 울면서 흘러가노라 장사익의 '찔레꽃'이나 이애주의 '부용산'이나 그렇게 한번 세상을 산 위로 들었다 놓는 마음 13월의 태양 아래 찔레꽃 장미꽃 호랑가시 꽃나무가 연한 호박손이 되고 꽃순이 되고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로 날아갈 때까지 마음이 마구 세상에 흘러나오고 싶은 그 순간까지 숨.. 더보기
함께하는 길고 긴 여행길에서... - 이중섭의 은지화 중에서 '가족' 구두 뒤축이 빛난다, 지가 무슨 신이라고 배낭을 꿈꿨을까마는 신의 바람이란 발가락처럼 오순도순 어둠과 고린내 속에서도 온 힘으로 떠받드는 것 아니겠는가 상가에 놓인 뒤축 꺽인 내 구두는 이 방 저 방 쉼 없이 돌아다닌다 문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문지방처럼 빛나는 뒤축은 몸의 출입을 막지 않는다 순례와 전도의 삶은, 낡은 구두처럼 자신의 문패를 지워야 한다 멀거니 닳은 뒤축을 내려다보니 신의 턱선을 닮은 듯도 하다 막힘이나 가둠이 없는 것이 정작 문 없는 큰문이라, 그러니 때가 때를 만나기를 골백번 같이 난다는 것은 빛을 주고 받는 것이다 저 혼자 이루는 후광은 없는 것 신은 갈수록 뒷모습이 빛난다. - 이 정록 시 '신의 뒷편' 모두 - 처가집의 일로 마눌님도 집을.. 더보기
삶의 이쪽과 저쪽. 똑, 또. 르. 륵..... 한번을 울릴 때 마다 두손, 높고 깊게 합장하고 무릎 끓고 머리 깊게 숙이며 두손 넓게 펼쳐 절을 한다 똑, 또. 르. 륵..... 일만 팔백 배. 땀은 물로 흐르고 몸은 떨리고 아득한데, 사물은 맑고 밝다 누구신가?! 말도 없이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시는 얼굴, 소리도 없이 물줄기 끊임 없다 똑, 또. 르. 륵..... 쌓이는 숫자만큼 덜어내는 인연, 허나 더욱 더 다가오는 얼굴! 똑, 또. 르. 륵..... 안타까움에 말없이 등을 차갑게 적신다. -홍수염 시 '인자(仁者)에게 길을 묻는다'모두 - 근자에 와서, 조금 더 생각케 되는 것이,, 아이의 '생활태도'에 대한 나의 교육방식이다. 대체로 잘 넘긴 큰아이와 다르게 작은 아이는 '끝임없는 도전'으로 나를 당혹케 해 왔는데.. 더보기
- before/after - oz 님의 사진중 인용.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 한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 평생을 속죄하며 살았다 비틀거리며 가는 세기말, 제기랄이여. -최영미 시 '세기말, 제기랄'모두 - Before. Isonicotinic acid 100 mg / 유한짓 정. Ethambutol HCI 400 mg / 마이암부톨 제피정. Pyrazinamide 500 mg / 유한 피라진아미드 정. Pyridoxine 50 mg / 삼일 피리독신 정. Rifampicin 600 mg / 리포덱스 정. - After. Allopurinol 100 mg / 자이로릭 정. Amosulalol 20 mg / 라우간 정. Furosemide 40 mg / 라식스 정... 더보기
부유하는 雪.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 시 '조그만 사랑노래'모두 - 체력이 떨어지는 날은 날씨도 무덥다. 유난히 더위를 타면서도 선선히 "설렁 설렁" 걷지 못하는 때문에 잠시 거리를 걸어도 몸은 흠뻑 땀에 젖고는 한다.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물도 많이 마시게 되고,, 여름이라는 미명아래 면을 좋아하던 차에 물냉면에 비빔냉면, 비빔국수, 모밀국수, 막국수... 더블어 여기저기서 팥빝수 까지,, 눈에 띄면 주저않고 들어.. 더보기
마음의 角을 바로 세우며... - 무더위에 지치지만,, 마음만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속의 눈동자들은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 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러나 파도소리 같은 건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 더보기
8월... 그리고,, 무더위 ! -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이백 년 전에 살았던 이 어처구니 없는 남자를 생각하면, 이 제는 미술관이 된 (발자크의 집)을 지키며 대낮에도 졸고 있 던 아줌마와, 매표소로 변한 부엌에서 수도꼬지를 틀어 물을 마시던 젊은 오후, 여러번 가필해 독창적인 걸레처럼 지저분 해진 원고지가 파시(Passy)의 골목길에 진열된 먹음직한 케 이크 위에 펼쳐진다. 발자크가 살아 있다면 입맛을 다셨을 예 술적인 디저트를 욕망 했으나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 다. 석탄푸대나 다름없는 수도복 밑에 가위와 칼을 매달고 문 학요리에 전념하다, 몇년에 한번 발작처럼 가망 없는 연애에 매달려 목숨을 소진했던 가련한 사람, 연인에게 달려가며 삼 십 분마다 마부에게 팁을 주었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 그리 고 세속의 먼지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