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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나 / 박목월 시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박목월 시 ‘가정‘모두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더보기
’蘭 과 石‘ /박 두진 시인.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박 두진시 ‘하늘’모두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웃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꿔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 시 ‘꽃’모두 산새도 날라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 더보기
액션장인2/실베스터 스텔론-존 람보. 보통 람보 시리즈가 플롯이 그렇게 거창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편은 유독 플롯이 간단하다. 가족의 복수를 다룬 데다 대부분 등장인물들도 최소한의 역할만 할당되어 할 일만 하고 바로 사라진다. 람보5는 역대 람보 시리즈 중 가장 씁쓸한 엔딩이다. 1탄은 그 난리통에서 체포됐지만 어쨌든 목숨은 건졌고 2탄과 3탄은 적지에 잡힌 전우들을 구해오고 사면도 받았다. 4탄에서 드디어 과거에서 벗어나 고향에 돌아와 편히 사나 싶었는데... 고향집과 딸처럼 키운 가브리엘을 잃어버리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스탤론의 인스타그램 글에 따르면 하드 R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R등급은 미국 영화 등급에서 '17세 미만 보호자 동반 관람가'로 (한국으로 치면 15세 관람가와 청소년 관람불가 사이), 하드 R등급은 같은 R등.. 더보기
7월의 시/ 안철주 시 ‘불행에 대한 예의’ 경주 계림 앞에서 아내를 안고 있었을 때 나, 세상에서 잠깐 지워졌던 것 같다 아내는 계림을 등지고 나는 들판을 등지고 서로 안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때 우리가 등지고 있었던 것은 세상이었을지 모른다 만만하게 생각한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 않아서 헉헉거릴 때 나는 아내를 사랑하면서 아내는 나를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간신히 견뎌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와 아내가 안았던 것은 어쩌면 나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내는 혀를 내밀며 아줌마가 되지만 오래전 나는 내가 아니었을 때가 있었고 아내도 아내가 아니었을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을 시련도 없는 생을 살았다 끝까지 차례를 지켜가며 누구나 만나게 되는 불행을 겪으며 살았을 뿐이다 순서를 기다리며 불행을 겪어야 하는.. 더보기
‘날아오른 새’ / 박남수 시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시 ‘새’모두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온갖 물상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 더보기
부부라는 인연, 그리고.., love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 버린다 오륙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거라. - 김 춘수 시 ‘이중섭4’ 모두 중섭이 그대 지금 어디 있는가 곡기 다 끊고 밤에 술 마시고 낮에 물 마시고 헌헌장부 그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 눈에 선한데 누구도 그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네 사위는 백년지객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 일본 가서 찬밥 취급에 문전박대 당한 게 아닌가 아내 남덕이와 두 아들 태현이 태성이 눈에 밟혀서 은박지에다 그리고 또 그리고 울다가 엽서에도 그리고 꿈에라도 만나면 그날은 행복했다지 중섭이 도대체 어디로 숨은 겐가 그대가 표지 .. 더보기
* 정진(精進). 오백년 천년을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가슴께에 칠해진 어지러운 원색의 빛깔들 여름이면 바다처럼 펼쳐진 산줄기에 나누어주고 가을이면 새빨간 빛깔들 뒷산 숲에 던져주고 나머지 짙게 덧칠해진 단청빛마저 마음에 걸려 바람에 던져주고 하늘에 풀어주고 세월 속에 가장 때묻지 않은 얼굴빛으로 엷어져 본래 제가 지녔던 나무 빛깔로 돌아여며 겸허해지고 담백하게 욕심을 벗어 더욱 굳세어지고 그렇게 버리면서 육백년을 지나왔으리니 백년도 백년의 절반도 다 못 살면서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빛깔을 지니고자 더 큰 목소리와 더욱 단단한 기둥을 거느리고자 기를 쓰다가 허세부리다가 우리들은 사바세상 티끌과 먼지로 사라지나니 진정 오래오래 사는 길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요란한 파격은 애당초 마음에 두지 않았던 맞배지붕은 보여주.. 더보기
’ 거울 속, 나‘ / 도 종환 시.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