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5월의 햇살 같은 시/김 영랑 시 . 오월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김 영랑 /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 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마음을 아실 이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것이면 내마.. 더보기
씨알의 시/김 수영 시.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 수영 시 ‘풀’ 모두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 더보기
’악의 꽃‘ -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시.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시인 (1821년 ~ 1867년) 1857년 : 6월 25일 「악의 꽃」 출판 -외설죄로 법정에 피소됨 1861년 : 2월에 「악의 꽃」 再版 발매 1864년 : 「파리의 우울」, 「소산문시(小散文詩)」발간 1867년 : 8월 31일 46세를 일기로 사망 - 항상 취하라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 시로 ,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 더보기
거울 앞에 나. 오늘도 내 안에 간직한 거울을 닦는다. 먼지가 덮인 거울을 깨끗이 닦으며 잠시 내가 거울을 잊었구나. 새 아파트로 이사와 현관 앞에 전신거울을 달며 내 안에 간직했던 거울을 생각해냈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에 거울을 닦는다. 벽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내 눈빛을 다듬는다. 눈빛에 깊이를 가늠해 본다. 관상을 찬찬히 보며 관상을 바로 잡는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 바로 내 안에 거울이다. - 이 현주 시 ‘거울’모두 * 살면서 거울을 딱는것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삶이 순탄치 않을 때의 거울은 내 마음처럼 무엇으로 뿌옇게 얼룩이 지어 내 얼굴이 흐릿하게 지쳐 보입니다. 때로는 거울을 딱습니다. 선명해 보이는 내 얼굴이 현실인듯 반가와 물을 뿌리고 더욱 깨끗하고 선명하게 .. 더보기
낮게 부르는 김 소월의 시/ *허밍.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김소월 시 '가는 길' 모두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 긴 소월 시 ‘먼 후일’모두 산새도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 넘어갈라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 더보기
10년의 세월 만큼,, 나는 상상했습니다 그들, 일인칭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노질을 그들이 저어가는 배의 방향들을 때로는 하루종일 때로는 밤이 새도록 멜로드라마, 사이코드라마, 홈드라마, 폭로, 스릴, 서스펜스······ 한때는 상상의 범주에 넣아주지도 않던 그런 망상들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지나갈수록 하나둘 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엔 드라마가 그다음엔 얼굴이 그다음엔 이름들이 그들의 온갖 이미지들이 다 사라지더군요 참 이상하게도 그들을 봐도 그들을 만나도 이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니까 대신 그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더군요 나는 그 구멍하고 놀았습니다 기묘한 구멍, 쓸쓸한 구멍, 끔찍한 구멍, 서러운 구멍, 특이한 구멍, 찬란한 구멍······ 언젠가는 그 구.. 더보기
다시 읽는,, 강은교 시인.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 은교 시 ‘우리가 물이 되여’모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 더보기
추억의 기기 /휴대용 소니 CD 플레이어 디지털 튜너 AM/FM 라디오 메가베이스 어느 날 낡은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귤이 아닌 귤 하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그 속에 잊혀져 있었는지 시퍼렇게 가슴이 말라버린 귤처럼 고운 색깔 가진 그대가 나로 인해 오랫동안 파리해져가는 건 아닌지 껍질을 까면 더 아름다운 그대가 무심한 세상 한 구석에서 타고난 빛깔마저 잃어가는 건 아닌지 - 이 선영 시 ‘내 서랍속의 귤 하나’ 모두 [오, 가엾은 비눗갑들],문학동네, 2021. * 스마트폰이 너무 편리해짐에 따라서 많은 기기들이 사라지고, 사람들도 더블어 소중한 경험들을 잃어 버리고 사라져 가고 있다. 기기와 문명의 발전은 선택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만,, 시간과 귀찮이즘에 빠져든 현대인 이라면 누구나 ‘간편함’을 쉽게 선택하고 누릴 수 밖에,,, 요즘 내 서재에 중요하게 자리잡은 SONY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