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숲에 들다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 말년의 입맛 / 고들빼기’ 김치. 잡초 [이향지] 내가 심어 내가 먹는 손바닥농사 뽑아도, 뽑아도, 쳐들어오는 잡초들과의 전쟁이다 나는 도라지 심었는데 쑥 민들레 어깨동무로 자란다 나는 무 배추 상추 시금치 아욱 심었는데 쇠비름 고들빼기 씀바귀 더 팔팔하다 내가 내 감자 고구마 서리태 옥수수에게 타이른다 쟤들 좀 봐라, 꾸짖을수록 내 잎과 열매 한층 모자라다 토박이 경운기 빌려서 깊이 갈아엎고 닭똥 푸집 섞어 주고 싶어도 하늘 높은 줄만 아는 다락밭이다 똑같은 흙, 똑같은 안개, 똑같은 햇볕 잡초도 사는데 내 희망 먹고 자란 푸성귀보다 구박덩어리들이 더 반들거리니 내가 게으른 탓이다, 내가 경계를 느슨하게 잡초도 식구로 보아주기로 한 날부터 잡초가 잡초 쪽으로 나를 엎어 버린 것이다 내가 계속 그늘 속에 앉았거나 누워 있으면 쑥 민들레 .. 더보기 채송화. 눈물이 저 길로 간다 [김사인] 눈물이 저 길로 간다 슬픔 하나 저 길로 굴러간다 물 아래 물 아래 울음이 간다 찔레꽃 한 잎 물 위에 흘러간다 오늘 못 가고 내일 내일 못 가고 모레 글피 글피 아니고 아득한 훗날 그 훗날 고요한 그대 낮잠의 머리맡 수줍은 채송화꽃 한 무더기로 저 길로 저 길로 돌아 내 눈물 하나 그대 보러 가리 그대 긴 머리칼 만나러 가리 서늘한 눈매 만나러 가리 오늘 아니고 어제 어제도 훨씬 아닌 전생의 어느 날 눈물은 별이 되어 멀리로 지고 손발 없는 내 설움 흰 눈 위로 피울음 울며 굴러서 간다 -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2007 밤의 가족어 사전 [이선이] 3음절로 된 단어를 고르는 중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래서 카르마 karma 셋이 되었을 때 느끼는 어설픈 안정감 편안한.. 더보기 해바라기 / 둘, 어느 한 사람의 산책길 [천양희] 숲이 잠 깨는지 나뭇잎들이 찰랑거립니다 아침햇살이 부신 듯 어린 새들 두 눈이 붉어집니다 바람이 몰래 빠져나가느라 오솔길이 더 좁아지는 아침 들쭉나무 아래 철 늦은 산꽃이 순하고 작년의 낙엽들 썩어 거름 된 지 오랩니다 한 사람의 산책길이 그냥 지나가고 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떠들썩하던 사람들 이곳에 와서야 해 지는 서편을 잠시 돌아봅니다 되돌아볼 것은 노을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지기 때문에 노을이 아름답다 하였으나 지기 때문에 무서운 건 누구이겠습니까 눈시울이 노을보다 더 붉어집니다 누구에게나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가오리연 하나 기우뚱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얼레를 더 당겨, 그래야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거여 연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노인이 힘주어.. 더보기 해바라기. 비움과 틈새의 시간 [곽효환] 푸르게 일렁이던 청보리 거둔 빈 들에 하얀 소금 덩이 같은 메밀꽃을 기다리는 비움과 틈새의 시간 배꽃과 복사꽃 만발했던 자리에 코스모스와 키 큰 해바라기 몸 흔들고 배롱나무 더 붉게 물드는 세상의 풀과 나무와 산과 강이 제각각의 빛깔을 머금고 뒤섞이는 시간 징검다리 여남은 개면 눈에 띄게 수척해진 물살을 건너 다음 계절에 닿을 듯하다 크게 물굽이를 이루며 사행하는 물살에 수없이 부딪히며 어질고 순해진 돌들에게서 거친 시대를 쓿는 소리가 들린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뿐이겠냐마는 초록이 다 지기 전에 물길 따라 난 길이 문득 끊어진 강변 마을 어느 허술한 찻집에 들어 아직 고여 있는 것들 미처 보내지 못한 것들 함께 흘려보내야겠다 빠르게 질러가느라 놓친 것들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 더보기 슬펐던 어린시절 기억 - ‘개망초꽃’ 죽은 아기를 업고 전철을 타고 들에 나가 불을 놓았다 한 마리 들짐승이 되어 갈 곳 없이 논둑마다 쏘다니며 마른 풀을 뜯어모아 죽은 아기 위에 불을 놓았다 겨울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붉은 산에 해는 걸려 넘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네 아이들이 미친년이라고 떠들어대었다 사람들은 왜 무우시래기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 풀을 바라보며 내 가랭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 정 호승 시 ’개망초꽃‘모두 헌정 [안정옥] 새벽 산책길 잠자는 것들을 뒤로 두며 걷는다 이미 들꽃들은 깨어 있다 새들도 막 날개짓 멈춰 새들이 먹이에만 급급하다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쩌면 틀린 생각.. 더보기 봄에 핀 Rainbow - 찔레 꽃* 찔레꽃 필 때 [박노식] 뭐든 오래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일지 길가의 흰 찔레꽃, 너는 너무 수줍어 보여서 나를 병들게 한다 옆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될 목소리를 문밖에 나가 조용히 듣는 것처럼 나에게도 비밀이 있었으면 바랄 때 네가 눈에 띄었다 어떤 아쉬움이 잔뜩 남아 있는 얼굴로 정말 서운한 표정으로 영아, 고백컨대 그날 그 저녁나절에 네 앞에서 나의 마음이 그랬다 - 마음 밖의 풍경, 달아실, 2022 몸 시 [이정모] 세상에 자기 몸에 시 쓰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햇살과 비와 천둥의 긴 진술을 짧은 문장으로 음각하는 바위와 이별을 준비하라는 하늘의 소리에는 아직 놓지 못한 시간이 부끄러운 붉새와 하염없는 침묵을 차갑게 얼리어 그리운 이름인 양 부수어 뿌리는 눈송이 그리고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아 우.. 더보기 *화양연화(花樣年華).., 덧 붙여. 화양연화 2 이미산 그 여름, 그 가로등, 내가 불빛 아래 서성일 때 너는 어둠 쪽에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간 만큼 꼭 그만큼 너는 물러났다 그러니까, 전등갓 속의 불빛이 바닥 쪽으로 곤두박질치는 거리와 그 빛에 의해 드리워진 공간, 우리의 허락된 영토는 꼭 그만큼이었을까 빛과 어둠, 경계는 완강했다 한 걸음만 내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마주선 그림자 적시며 더듬이를 키웠다 새벽이면 지워질 관계로 기꺼이 한 방향을 보았다 무엇을 보았을까 어둠을 삼킬수록 더듬이는 환하다 그가 들숨을 쉬면 나는 그의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그의 모퉁이에 서있는 내 그림자를 만난다, 다시 나의 들숨에 차곡차곡 그가 새겨지고 먼 거리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우리의 그림자 꽃들 끝끝내 살아남을 슬픔을 위해 우리는 일부러 소나기.. 더보기 Mosaic - 쟈끄 프로베르. 그대 방금 꺽은 꽃을 안고 거기서 무얼 하는가 어린 소녀여 그대 시든 꽃을 안고 거기서 무얼 하는가 젊은 처녀여 그대 말라가는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는가 멋진 부인이여 그대 죽어가는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는가 늙은 여인이여 승리자를 기다리지요. -'꽃다발'모두 ---------------------------------------------- 누군가 열어놓은 문 누군가 닫아버린 문 누군가 앉았던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물어버린 과일 누군가 읽고 난 편지 누군가 넘어뜨려 놓은 의자 누군가 열어 놓은 문 누군가 아직도 달리는 길 누군가 헤쳐 나가는 수풀 누구나 몸을 던지는 강 누군가 죽은 병원 -'메시지'모두 -------------------------------------------..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