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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2023년 말미에 덧붙여,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 시 '겨울.. 더보기
자유롭게 나는 새. 어느날 아름다운 절에 놀러갔습니다. 차 마시는 방 앞 산의 숲이 그대로 들어 있었지요 진짜 숲인 줄 알고 새들이 와서 머리를 부딪히고 간다는 스님의 말을 전해들으며서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었지만 나는 문득 슬프고 가슴이 찡했지요 위장된 진실과 거짓된 행복 하도 그럴 듯해 진짜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갔다. 머리를 박고 마음을 다치는 새가 바로 나인 것 같아서요 실체와 그림자를 자주 혼돈하는 새가 나 인 것 같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답니다. - 이해인 시 ‘유리창 위의 새’ ** 추석날 아침, 06:00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차례를 09:00 시에 드렸습니다. 딸들과 동생, 그리고 처와 나. 한분 남은 누이와 매형은 명절 인사의 문자만 남기고 향을 피워 올렸습니다. 때마다 술잔에 술을 따라 올리지.. 더보기
솔직한 ‘마음’으로 ,, 우리는 가끔 '더럽다'를 '드럽다'라고 한다 우리는 가금 '쌀'을 '살'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끔 '팔'을 '폴'이라 한다 우리는 가끔 '무''를 '무시'라 한다 저 드러븐 새끼에게 먹이겠다고 무거운 살을 들고 여기까지 마 폴이 빠질 것 같다 인사도 모르는 저 무시같이 밍밍한 놈을 그래도 사람이라고 그래도 우리는 다 알아듣는다 참 히한하다. - 성 선경 시 ‘해음(諧音) 3‘ [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파란 2020. * 풋풋한 시절에 “ 척, 보면 압미당~” 하는 개그가 유행 했었다. 사회생활의 ’챠트 키‘처럼 한때 유행 하던 말 이었는데, 나이가 먹고 몸이 ‘정상’이 못하게 되니까? ‘먹고 배설’하는 가장 기본의 행위가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밑바닥 깊숙히 ‘깔린 기본’ 임을 새삼.. 더보기
능소화의 추억. 이제는 고흐가 싫다 한때는 그리도 사랑했으나 이제는 노랗게 불타는 해바라기가 싫다 비틀린 채 타오르는 측백나무도 싫고 그놈의 붉은 수염이 싫다 불이 쌓여 생긴 병일까 갈수록 목마름이 더해가고 물을 찾고 물을 들이키며 이제는 고흐가 싫다 그놈의 붉은 수염이 싫다 평생을 자신에게 성실했던 자여 - 윤 재철 시 ‘소갈병’ - 한때는 시골의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능소화’ 국민학교 졸업 후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꽃이 였는데,, 대학시절 마이산을 찾았다가 절벽을 따라 거대한 규모의 능소화가 흡착근을 뻗어 올라가면서 온 절벽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풍경은 직접 눈으로 봐서 그 경이로움을 맘껏 즐길 수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나무의 능소화 라고 말할 수 있는.. 더보기
집보다는 길에서, 집에서보다는 길에서 가고 싶다. 톨스토이처럼 한겨울 오후 여든두 살 몸에 배낭 메고 양편에 침엽수들 눈을 쓰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눈 혼자 터벅터벅 걸어 기차역에 나가겠다가 아니라 마지막 쑥부쟁이 얼굴 몇 남은 길섶, 아치형으로 허리 휘어 흐르는 강물 가을이 아무리 깊어도 흘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 뼈대 그 앞에 멎어 있는 어슬어슬 세상. 어슬어슬, 아 이게 시간의 속마음! 예수도 미륵도 매운탕집도 없는 시간 속을 캄캄해질 때까지 마냥 걸어. - 황동규 시 ‘집보다는 길에서‘ *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 젊은시절 부터, 산을 좋아 했다.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북한산, 관악산을 주말마다 오르곤 했다. 군대에 가서 3보 이상은 탑승 이라는 포병 이었는데 ‘시범부대’로 뽑혀서 .. 더보기
에스프레소 한잔.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뀅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닐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 더보기
* 정진(精進). 오백년 천년을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가슴께에 칠해진 어지러운 원색의 빛깔들 여름이면 바다처럼 펼쳐진 산줄기에 나누어주고 가을이면 새빨간 빛깔들 뒷산 숲에 던져주고 나머지 짙게 덧칠해진 단청빛마저 마음에 걸려 바람에 던져주고 하늘에 풀어주고 세월 속에 가장 때묻지 않은 얼굴빛으로 엷어져 본래 제가 지녔던 나무 빛깔로 돌아여며 겸허해지고 담백하게 욕심을 벗어 더욱 굳세어지고 그렇게 버리면서 육백년을 지나왔으리니 백년도 백년의 절반도 다 못 살면서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빛깔을 지니고자 더 큰 목소리와 더욱 단단한 기둥을 거느리고자 기를 쓰다가 허세부리다가 우리들은 사바세상 티끌과 먼지로 사라지나니 진정 오래오래 사는 길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요란한 파격은 애당초 마음에 두지 않았던 맞배지붕은 보여주.. 더보기
‘배 고픈’ 식당/슬픈 ‘허기’ 밥은 왜 따스해야 맛나는가 그건 밥을 위해 애쓴 이의 마음이 뜸 들어 있어서이다 찬밥은 왜 싫은가 밥을 애타게 그리다가 식어버린 아픔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상 먹어야 하는 밥은 울렁이는 허기를 좇아주기도 하지만 자주 목이 메이게도 하는 영물이다. - 박 이현 시 ‘밥3’모두 * 성의: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뜻. - 하루에 한끼는 ‘매식’을 하게 되는데 ‘내돈내산’이라는 말도 있는데 내돈 내고 밥을 먹는데도 50%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비싼 돈’이 너무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주에 두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코스내에 가끔 들르는 식당 두곳이 ‘다시 가고싶지 않은 식당’으로 리스트 업이 되었다. 한곳은 ‘우리동네 국수집’이라는 국수집.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입맛이 떨어지면 비빔국수, .. 더보기